1995년 인터넷 상용화와 함께 와이파이·지그비 같은 무선통신 기술이 발전하며 2000년 초부터 스마트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홈 시장은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30%도 안 되는 사람들이 스마트홈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우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스마트홈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적 복잡성과 낮은 사용자 경험 △프라이버시와 보안 우려 △기술 표준과 호환성 문제 △고비용과 수익 모델 부재 △가격 접근성과 시장 인식 부족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행스럽게도 앞의 세 가지는 이전 기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매터(Matter)와 같은 개방형 단일 표준 등장과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매터 표준은 제품 구매와 설치를 쉽게 해 줄 뿐 아니라 플랫폼 연동성을 높여주고, 블록체인 및 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사용자 보안과 프라이버시 이슈도 해결해준다. 생성형 AI는 자연어와 같은 직관적 방법을 이용해 스마트홈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고비용 및 수익 모델의 부재', '가격 접근성 및 시장 인식 부족'은 아직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경제 상황도 녹록지만은 않아 보인다. 스마트홈 플랫폼 사업자, 디바이스 제조사, 서비스 공급자 모두가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려면 상호 협업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즉, 초연결·초지능 시대에 맞는 개방형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시장 참여자 모두가 수익성과 고객 니즈 만족이라는 접점에 도달해야 고객의 스마트홈에 대한 인식 및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개방형 스마트홈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4가지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표준화·호환성 확보
우선, 표준화를 통해 호환성을 강화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쉽게 통합해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소비자가 걱정없이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하고 자신의 필요에 맞게 홈 허브를 구축하도록 해 소비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만족하는 제품은 서로 연동해 사용하기 쉽기 때문에 스마트홈 시스템의 설치 및 운영을 단순화하고 최종 사용자에게 보다 나은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 동시에 제품이나 서비스가 일정 수준 이상의 보안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해 사용자들의 신뢰를 높여 장기적으로 스마트홈 도입을 촉진한다.
디바이스 제조사는 호환성을 강화해 개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시장 진입을 쉽게 하고, 서비스 제공자도 플랫폼을 통해 스마트홈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제품과 서비스 측면의 경쟁을 촉진하고 더 많은 혁신과 선택의 다양성을 가져올 것이다. 이를 토대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어 보다 많은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500개가 넘는 스마트홈 관련 기업들이 매터와 같은 개방형 스마트홈 연동 표준을 개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방형 플랫폼 개발 확대
개방형 플랫폼을 개발해 다양한 개발자나 제조업체가 스마트홈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표준화된 개방형 플랫폼은 플랫폼 사업자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디바이스 제조사는 물론 서비스 제공업체가 스마트홈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마트홈이 단순제어나 자동화를 넘어 쇼핑, 음식 배달, 미디어 콘텐츠, 세탁, 보험 등 고객이 원하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실질적 고객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10월 초 삼성전자는 개발자 콘퍼런스(SDC 2023)에서 스마트싱스 홈 API와 콘텍스트 API, 다양한 형태의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공개했다. 스마트싱스 홈 API는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제3자가 쉽게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할 수 있게 한다. 콘텍스트 API는 개발자가 AI와 센싱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경험까지 추천할 수 있게 해 준다. 음식배달, 쇼핑 등과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 사업자들이 스마트홈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파트너와 산업 생태계 구축
협력과 파트너십 강화도 필요하다. 플랫폼 사업자, 제조업체, 서비스 제공업체는 물론 정부 기관과의 협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마트홈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노력은 이미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21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지능형 IoT 적용 확산 사업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사용자를 포함해 이들 사업자 모두가 참여하는 실증 사업을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스마트홈 분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민간 분야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카드가 17개 식품 제조사와 운영하는 식료품 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은 59만원짜리 스마트 멀티 조리기구를 5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대신 약정 기간 동안 17개 식품 협력사 쇼핑몰에서 일정 금액 식품을 구매해야 한다. 얼핏 보면 식품 구매에 따른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에 구매하던 식품의 구매처만 바꾸는 것이므로 추가 부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플랫폼사는 고객의 사용을 유도하고, 디바이스 제조사는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서비스 공급자는 대기업과 협력해 기존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시장에 더 쉽게 진입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서로 다른 회사들이 공동 마케팅 활동을 함으로써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소비자의 신뢰를 구축하며 보다 넓은 고객층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정책적 지원
정책적 혹은 경제적 장려책을 마련해 소비자와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역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확산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신축 아파트나 주택을 지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스마트홈 기기를 설치하거나 지능형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그에 따른 인증 라벨을 제공함으로써 건물 가치의 상승을 유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설사에 납품되는 스마트홈 제품들이 IoT보안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해 보안 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물론 인증제도가 기업에는 규제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제도들은 스마트폼의 표준화나 호환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고 폐쇄적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한 바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근에 이를 개정해 개방형 스마트홈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진행돼 이전과는 다른 장려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네 차례 기고를 통해 스마트홈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큰 그림과 세 가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마트홈은 물리적 스마트홈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마트한 라이프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스마트홈 공간이 집 안팎을 넘나들도록 확장돼야 한다. 진화된 AI를 통해 서비스 퀄리티를 혁신해야 하고 관련 시장의 판을 키우기 위해 생태계를 확장해야 한다.
이미 아마존이나 애플, 구글 같은 글로벌 스마트홈 사업자들은 이런 노력을 진행 중이다. 매터 표준과 생성형 AI와의 통합에 적극적이며 자신들의 플랫폼에 보다 많은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플랫폼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에서는 '지능형 홈 얼라이언스'를 발족해 민관 협력 생태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국내 스마트홈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받는 표준 재정비를 추진해 건설사가 선제적으로 도입·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도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불편을 점진적으로 해소해 스마트홈서비스 산업으로의 도약과 기틀을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다.
정부도 AI 산업의 전초기지인 주거생활의 지능화를 위해 법· 제도적 지원과 다양한 실증사업에 예산을 투입해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함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송재호 한국AI스마트홈협회장 soarup1@gmail.com
〈필자〉서강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1993년 KT 연구원으로 입사해 네트워크분야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를 개발했다. 2003년부터 미디어 콘텐츠 등 신사업 분야 기획 및 사업을 통해 900만 가입자를 확보한 IPTV 성장에 기여했다. 2014년부터 KT 미래융합사업추진실 미래사업을 3년간 주관했고, 2017~2018년에는 KT 통합보안사업단장으로 영상보안·정보보안·융합보안 사업을 맡았다. 2018년 11월부터 KT 미디어플랫폼사업본부장으로 미디어 사업을 책임졌다. 2020년 12월부터 KT AI/DX융합사업부문장을 맡아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네트워크 기반 DX 플랫폼사업을 총괄했다. 2021년 제12대 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