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생성 AI의 자기표절과 추급권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는 12·12 사태를 겪은 중장년 세대의 아픔 뿐만 아니라 MZ 세대의 관심과, 관객 동원에도 성공했다. 세대를 초월하고 한 시대를 관통하는 역작의 탄생이다.

'서울의 봄'의 성공비결 중 배우 황정민의 '미친' 연기력을 빼놓을 수 없다. 배우는 자기자신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그려내는 창작자다. 황정민이 연기한 '반란군 전두광'은 실존 인물보다 더 강렬했다. 황정민은 영화를 촬영하는 '창작상황'에서 '반란군 전두광'의 '고유한 분위기'를 창작했고, 관객은 깊이 공감했다. 예술의 진정성, 예술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이처럼 창착품의 '고유한 분위기'에 담겨져 우리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그 무엇이다.

생성 AI의 진격이 놀랍다. 조만간 생성 AI 기업은 황정민의 '반란군 전두광' 캐릭터와 '순애보 김석중' 캐릭터의 얼굴과 표정과 목소리, 연기의 몸짓 등 디지털 특성을 사들인 후 그 '고유한 분위기'에 기반한 수많은 창작물을 생성하고 스트리밍할 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디지털 데이터를 제공, 직접 연기하지 않고도 생성 AI로 창작물을 생성할 수 있다. 마치 마블 시리즈 영화사가 각 캐릭터의 고유한 분위기를 수없이 재조합하고 재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되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다행히 영화같은 창작물은 초기 계약을 통해 영화의 흥행성적에 따른 배분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책과 음악은 저작권법으로 판매에 따른 이익을 배분받을 수 있다. 저작인접권은 창작된 표현을 직접 보호하는 저작권은 아니지만 그 역할에 따라 저작권에 준하는 권리를 보호한다. 음악은 작사, 작곡, 편곡은 저작권으로, 이를 실제로 해석하고 음악으로 만드는 실연자(가수와 연주자)의 권리, 음반제작자의 권리, 방송제작자의 권리는 저작인접권으로 보호된다.

화가는 단 하나의 고유한 미술품을 창작해 캔버스에 담긴 그림과 그에 수반된 모든 권리 전체를 판매한다. 저작권은 보호되지 못한다. 훗날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에도 작가와 가족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명작을 남긴 것은 화가인데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미술 선진국 프랑스는 1920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추급권(追及權, '따라가는 권리') 또는 미술품 재판매 보상청구권(artist's resale right)를 입법했다. 한번 판매된 그림이라도 재판매때 일정부분을 작가 또는 가족에게 배분하는 제도다. 미술품에 대한 일종의 저작권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여러 나라에서 법제화된 추급권을 올해 7월 한국도 '미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500만원 이상 거래를 대상으로 법제화했다. 미술시장의 복잡한 특성으로 시행은 4년 후부터다. 더 큰 논란과 기대는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아트 분야로 옮겨져 더욱 거세지고 있다.

생성 AI가 사들인 디지털화된 캐릭터의 '고유한 분위기'는 지켜질 수 있을까? 창작자인 배우는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생성 AI는 무한 재조합을 통한 '대량 자기표절 기계'다. 자기표절은 창작자의 무덤이다. 배우는 자기표절을 넘어서는 새로운 창작을 요구받는다. 생성 AI는 미술작품의 고유한 분위기를 무한 재조합해 거침없는 자기표절을 수행할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품의 변형생성에 대한 창작품의 '고유한 분위기'의 변성 가능성과 그 '전달'과 '수용'의 과정 탐색까지 담아내야 한다. 실제 구현을 위해,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 개발 필요성과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