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에서 공학으로 진화하는 양자컴퓨팅

조일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인공지능컴퓨팅연구소장
조일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인공지능컴퓨팅연구소장

21세기는 기술 패권이 국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특히 양자컴퓨터는 매우 중요한 전략기술 분야로 주목받는다. 20세기 중반부터 인류 발전 중추가 돼 온 컴퓨터 기술이 발전 한계에 부딪힌 상황 때문이다.

현재 컴퓨터 기술은 반도체 집적도 한계와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과도한 전력 소비 문제를 겪고 있다.

신약 개발, 기후 예측 등 대규모 데이터 분석과 복잡한 알고리즘 처리에서 성능 한계도 드러낸다. 향후 컴퓨팅 기술은 양자 기술 응용을 통해 혁신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는 1982년에 리처드 파인만이 제시한 양자역학을 컴퓨팅에 적용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최근 10년 동안 꽤 주목할 만한 학문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중첩과 얽힘 원리를 활용해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고전 컴퓨터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소인수 분해나 암호 체계 해독, 기후 모델링과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할 것이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함으로써 AI 성능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물론, 신약 개발이나 재료 공학 분야 등 발전도 기대된다.

양자분야 글로벌 IT기업과 스타트업들도 혁신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IBM, 구글, D-웨이브 등 기업은 초전도체, 포획이온, 양자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세서를 개발 중이다.

아울러 통합 개발 플랫폼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자사 플랫폼에 대한 유용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사용자 유입을 확대하고 이를 통한 기술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 6월, 양자 과학기술을 핵심 국가 비전으로 지정하고 2035년 이후 양자 경제 실현을 위한 중장기적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인프라 구축 사업, 양자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등이다. 지난 10월에는 국가 차원에서 양자과학기술 연구 기반을 조성하고 산업육성을 골자로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국내 여러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중심으로 국내·외 협력을 통해 양자 알고리즘 및 양자 소프트웨어(SW) 개발과 더불어 다양한 큐비트 소자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 큐비트 소자 연구는 IBM, 아이온Q 등 글로벌기업의 양자칩 개발에 비해 초보적인 단계다.

하지만 아직 특정 소자의 기술적 우위가 결정되지 않았고 현재 트렌드가 양자이론 기반 과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실세계 문제를 풀 수 있는 양자 엔지니어링으로 도약 중이다. 따라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향후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연구원 또한 양자 알고리즘, 회로 컴파일, 양자칩 제어 및 검증 등 전 과정을 포괄하는 풀스택 양자 컴퓨팅 기술을 개발 중이다.

또 양자 오류정정 기술 기반 결함허용 양자컴퓨터 기술과 이를 위한 고전-양자 컴퓨팅 시스템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고전 컴퓨터의 범용적 처리능력과 양자컴퓨터의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병렬처리 능력을 결합하는 고전-양자 컴퓨터 하이브리드 기술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양자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80%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스템 R&D, 상용화 경험과 세계 최고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양자컴퓨터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산·학·연이 지속적으로 협력하면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뛰어넘을 수 있다.

또한, 아직 상용 시장을 장악하는 뚜렷한 기업도 없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R&D 기획안 제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R&D를 수행하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도출한다면 글로벌 양자기술을 선도하는 연구그룹과 기업 탄생도 시간문제다.

조일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인공지능컴퓨팅연구소장 iycho@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