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소외는 '공동체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고 멀리하는 것' 또는 '인간이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최근의 소외는 사회적 약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 발전으로 세상은 갈수록 풍요하고 편리하지만 우리는 왜 더욱 외로운 걸까.
원인과 특징을 보자. 첫째, 신체의 물리력 약화다. 진화의 핵심수단이 기술이다. 인간은 악어, 사자처럼 근육, 뼈를 강화하지 않고 신체 외연을 확장하는 방향을 택했다. 신체 역할과 기능을 외부에 확장해 도구, 기계를 만들었다. 정신 활동을 외부화한 것이 인공지능(AI)이다. 신체를 떠받히는 근육, 뼈의 기능은 발전하지 못했다. 인위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질병을 피하려 병원에 다닌다. 못다 이룬 꿈일까. 슈퍼맨, 터미네이터 등 영웅이 나오거나 니암 리슨, 마동석이 출연하는 액션영화에 열광한다. 약한 신체에 불안이 있고 소외가 나온다.
둘째, 분업과 협업이다. 혼자 만들어 쓸 수 있는 기술은 가치가 작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기술일수록 가치가 크지만 분업과 협업이 필요하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성과가 크다.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줄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구조로 진화해 왔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사생활 영역으로 남게 된다. 분업과 협업에서 제외될 위험 속에 소외가 숨어 있다.
셋째, 기술 원리다. 번개·일식 등 자연현상은 원리를 모를 때 공포 그 자체다. 왕조시대엔 권력의 부도덕, 무능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인간이 도끼, 호미 같은 도구를 만들 때 누구나 제작, 이용 원리를 안다. 기계가 나오면서 쉽게 원리를 알 수 없게 됐다. 제작과정에 참여한 사람도 맡은 부분이 아니면 모른다. 소비자는 더욱 그렇다. 원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불안하다. 여기서 매뉴얼이 나온다. 임직원을 업무 매뉴얼로 묶고 고객을 이용 매뉴얼로 묶는다. 매뉴얼을 익히면 기계가 어떻게 제작되고 작동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매뉴얼만으로 소외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스스로 인지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기술 속에 소외가 잠재돼 있다.
넷째, 서비스 원리다. 도구, 기계 이용은 매뉴얼 등 학습을 통해 쉽게 익힐 수 있다. 그러나 AI 등 첨단 서비스는 사업자조차 모르는 블랙박스(딥러닝 및 의사결정) 구간이 존재한다. 잘못 될 수 있다는 불안은 가중된다. 서비스는 다른 서비스와 연결되고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성장한다. 인간은 서비스 제공과 이용과정에 접착되어 기술 생태계를 유지하는 부품이 된다. AI생태계가 싫다고 나 혼자만 빠져나올 수 없다. 생계를 위한 직업이나 다른 사람과의 연결고리까지 끊긴다.
다섯째, 기술의 노동 대체다. 과거 기술은 노동에 의존했다. 도끼를 만들기 위해선 노련한 장인이 누군지 중요했다. 첨단 서비스에선 임직원이 누군지 보다 어떤 기술을 채용했는지 중요하다. 대부분 노동을 기술이 대체하고 있다. AI가 활성화되면 정신까지 모방, 대체할 수 있다. 노동 대체 기술을 넘어 인간 대체 기술로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시스템 위기의 상존이다. 정부의 행정망 사고, 정보통신기업의 서비스 중단사태가 일어난다. 작은 실수가 큰 피해를 낳고 많은 시스템이 연결되어 피해는 확산된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소외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술없이 살 수 없는 시대다. AI 등 제작과 서비스 제공에 의견을 듣는 등 고객의 상시 관여가 중요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설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의혹이 있으면 언제든 기술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기술생태계 맨 윗자리로 높이는 것이 소외극복의 시작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