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는 80여년 전 '대지 윤리(land ethic)'를 제시하며 윤리가 진화해왔고 확대돼야 함을 주장했다. 3000년 전 그리스에서 오디세우스가 노예를 재산으로 간주하였기에 노예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도 용인될 수 있었지만 이후로 점차 모든 인간이 도덕적 존중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확대됐다. 20세기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인간도, 그리고 사람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포유동물을 중심으로 다른 동물들에게도 윤리가 확장돼 왔다. 레오폴드는 도덕적 고려를 받을 대상이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식물, 그리고 토양, 물 등의 무생물이 포함된 생태적 전체, 즉 생태계가 돼야 함을 강조했고 이러한 '대지 윤리'로 그는 생태중심윤리의 창시자가 됐다.
사실 자연파괴의 기본 사상을 제공한 사람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 등 주장을 했던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등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생각은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였다. 여기서 좀 더 확장된 생명중심주의도 대체로 감각기관을 가진 동물을 중심으로 개체수준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기에 생물군집과 생태계에 대한 고려는 없으며 생물종 자체에 대한 도덕적 권리도 인정받지 못한다.
자연보전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윤리적 진화가 더 진행돼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동물에 대해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체적 학대를 금지하고 있는 데, 이는 동물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 못하다. 토양을 오염시키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토양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며, 토양이라는 생태계가 주체로서 내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법학자 스톤(Stone)은 1972년 '나무는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논문을 통해 자연도 법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법원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이처럼 레오폴드의 꿈은 아직 요원하지만 그 뜻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고 있다. 대표적 생태중심윤리인 '심층생태주의'는 생물다양성은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이를 감소시킬 권리가 없고 심지어 생물다양성을 위해서는 인구도 감소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강령을 가지는 심층생태주의는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바이블'이다.
'생태'라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된다. 한강의 생태, 저어새의 생태, 생태문학 등에서 보듯이 '생태'는 학문으로서의 생태학 이외에도 생태계 또는 자연, 생물종의 습성, 생물 또는 자연을 사랑하는 태도, 심지어 환경운동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그러기에 생태와 관련해 사람들 생각이 다양하며 때로는 가치가 충돌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연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어떤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지 판단기준도 다르다. 레오폴드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생태계의 완전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전하는 행동은 올바르다. 그 반대의 행동은 그르다'라고 하는 가이드라인은 제시했다.
레오폴드는 늑대를 제거함으로써 그 먹이인 사슴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던 사례를 들면서 생물개체보다는 생태계 전체를 고려해야 함을 강조했다. 원래의 생태계 구조와 기능이 달라지고 균형이 깨어져 불안정하게 되는 것은 결코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여러 섬에는 흑염소, 꽃사슴, 토끼 등 초식동물이 유입돼 식생이 파괴된 곳이 많다. 어떤 섬에는 과거에 없던 포식동물이 유입돼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낮아지기도 한다. 많은 경우 이는 반려동물과 가축의 도망 또는 의도적 방치의 결과다. 이와는 반대로 일제강점기에는 해수구제라는 이름으로 호랑이, 늑대, 표범 등의 자생 포식동물을 대거 제거해 멸종시켰고 그 피해가 아직도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생태계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 또는 변화를 유발한 외래동물의 유입과 최고포식자의 제거는 레오폴드가 봤을 때는 틀림없이 잘못된 행동일 것이다.
레오폴드는 자신이 쏜 총으로 죽어가는 늑대의 눈에서 나오는 강렬한 초록 불꽃이 사그라짐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자기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했다. 이제는 우리도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생태계를 되돌리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자연의 균형과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특히 최고포식자의 복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늑대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피해서 다니는 표범과 스라소니를 우선 복원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더라도 늑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있어야 한다. 생태계의 생산자인 식물에게는 늑대는 포악하고 못생긴 동물이 아니라 인자한 할아버지로 보일 것이며 반면에 사슴이나 고라니는 악몽을 꿀 때 나타나는 악마로 보일 것이다. 최고포식자는 생태계 전체를 조절하는 핵심종이다.
대지윤리나 심층생태주의와 같은 생태중심주의는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바꾸게 해 자연과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도록 하는 기본 철학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고 자연의 정복자도 아니며 자연생태계의 평범한 시민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많은 지구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조도순 국립생태원장
〈필자〉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진주고와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생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가톨릭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30년간 생태학을 가르치고 은퇴했다. 유네스코 인간과생물권(MAB) 프로그램을 통한 국내외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보전을 위해서 노력해왔고 생물권보전지역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열대림 생태계의 연구와 보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