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디지털카메라는 'SD카드'를 주요 저장 매체로 사용했다. 부피가 작고 저장 용량이 커 카메라에 사용하기 적합하다.
그런데 최근 출시된 카메라 중에는 'CF익스프레스'라는 규격을 혼용하는 제품도 있다. 국제 그룹 '콤팩트플래시 협회(CFA)'가 세운 차세대 메모리 규격이다. 특히 8K 이상 고해상도 동영상 녹화를 지원하는 카메라 중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메모리 규격 바꾸는 이유는 '더 빠른 속도'
왜 SD카드 대신 생소한 CF익스프레스 카드를 도입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전송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SD카드가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는 보급형 제품이 초당 90MB 내외, 고사양 제품이 초당 250MB 내외다. CF익스프레스 카드는 컴퓨터 메인 저장 장치에 사용되는 NVMe PCIe 3.0 SSD와 동일한 원리를 채택해 전송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제품에 따라 초당 1~4GB 용량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다.
최근 8K 동영상이나 슈퍼슬로우모션 녹화를 지원하는 디지털카메라가 속속 등장하면서 SD카드의 한계가 더욱 뚜렷해졌다. 일반 SD카드의 저장 속도가 녹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녹화가 중단되거나 저장된 동영상이 끊겨 보이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에 카메라 제조사들은 SD카드보다 빠른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주 저장 장치로 삼았다.
고해상도 동영상 촬영에 관심 있다면 CF익스프레스 규격이 어떤 것인지 알아두는 게 좋다. 시중에 출시된 다양한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살펴보고 적합한 제품을 고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CF익스프레스 카드는 3가지 규격으로 나뉘며 속도도 천차만별이다. 카메라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고르려면 제품 사양 중 '타입'과 'VPG 등급'을 확인해야 한다.
타입 총 3가지...카메라 제조사마다 채택 규격 달라
CF익스프레스 카드는 크기와 속도에 따라 A·B·C 3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타입 A는 소니 플래그십 카메라에 사용된다. 크기는 가로 28mm, 세로 20mm, 두께 2.8mm로 SD카드보다 약간 작다. 두 카드의 크기가 비슷하다 보니 호환성이 비교적 우수하다. 소니 a1, a7R V, a9 III 같은 고사양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 슬롯은 SD카드나 CF익스프레스 타입 A 카드 중 원하는 것을 장착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이론상 초당 1000MB만큼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으며, 실제 제품은 읽고 쓰는 속도가 700MB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사양 SD카드의 3배 정도다. 고해상도 동영상을 녹화하거나 사진을 고속으로 연속 촬영할 때는 가급적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사용하는 게 좋다. 용량이 큰 사진이나 동영상도 바로바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타입 B는 주로 캐논과 니콘 플래그십 카메라에 사용된다. 크기는 가로 38.5mm, 세로 29.8mm, 두께 3.8mm로 타입 A나 SD카드보다 훨씬 크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이론상 초당 2000MB로 타입 A의 2배다. 단, 실제 제품의 읽고 쓰는 속도는 세부 사양에 따라 800MB/s에서 1800MB/s까지 크게 달라지므로 구매하기 전에 사양을 잘 살펴봐야 한다.
타입 C는 세 가지 타입 중 가장 크고 속도가 빠르다. 크기는 가로 74mm, 세로 54mm, 두께 4.8mm로 신용카드와 비슷한 크기에 두께도 가장 두껍다. 데이터 전송 속도는 이론상 초당 4000MB로 타입 A의 4배, 타입 B의 2배다. 속도가 매우 빨라 초고해상도 미디어 저장에 적합하지만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타입 A 카드로도 8K 동영상 정도는 무리 없이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 녹화 성능 나타내는 VPG 등급, 주로 200과 400으로 나뉘어
VPG 등급은 동영상 녹화 성능을 나타내는 규격이다. 기준은 여럿 있지만 현재 주로 사용되는 건 VPG-65, VPG-200, VPG-400이다. VPG 뒤에 오는 숫자는 최저 쓰기 속도를 나타낸다. VPG-200 등급을 받은 CF익스프레스 카드는 쓰기 속도가 200MB/s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CF익스프레스 카드의 이론상 속도를 생각해 보면 모든 제품이 VPG-400 등급을 충족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VPG-200 등급만 취득한 제품도 있다. 메모리 카드에 데이터를 기록하면 열이 발생하면서 일시적으로 성능이 느려질 수 있다. VPG-200 등급 제품은 테스트 도중 쓰기 속도가 400MB/s 밑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VPG-200 등급 제품을 피할 필요는 없다. 쓰기 속도가 초당 200MB에 그쳐도 8K 고해상도 동영상을 녹화하는 데는 충분하다.
소니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a1 매뉴얼을 보면 8K 동영상을 찍을 때 VPG-200 이상 등급을 취득한 CF익스프레스 타입 A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등급을 취득하지 못한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카메라에 장착하면 8K 녹화 기능이 비활성화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고해상도 동영상을 녹화하려면 믿을만한 제조사가 VPG 등급을 취득하고 출시한 CF익스프레스 카드를 사용하는 게 좋다.
비싼 가격이 단점...허위 등급 표시도 주의해야
CF익스프레스 카드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다. 1GB당 가격은 보급형 제품이 1000원 내외며 고사양 제품은 2000원 이상이다. SD카드의 1GB당 가격은 보급형 제품이 200원 내외, 속도가 빠른 고사양 제품은 500원 내외다. CF익스프레스 카드가 용량이 같은 SD카드보다 4~5배가량 비싸다.
고해상도 동영상을 촬영할 생각이라면 VPG 등급을 정상적으로 받은 제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VPG 등급 테스트는 CFA가 직접 주관하는데, 까다롭고 오래 걸리며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메라 관련 소식을 전하는 해외 매체 페타픽셀(PetaPixel)은 일부 제조업체가 제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VPG 등급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카드 내부의 코드를 조작해 등급을 취득한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제품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은 제조사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한편 '배속'으로 CF익스프레스 카드 성능을 표기한 제조사도 드물게 있다. 배속은 200X, 400X, 600X, 1000X, 1000X+까지 5종류로 나뉘며 각각 이론상 전송 속도가 30MB/s, 60MB/s, 90MB/s, 150MB/s, 150MB/s 이상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 기준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CF익스프레스 카드는 모두 1000X+ 규격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속보다는 VPG 등급이 현재로서는 의미 있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테크플러스 이병찬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