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은 확실한가 보다.
정치권이 기득권 단체에 힘을 더 실어주는 모양새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발의한 개정안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21일 회의를 열어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안 가운데 임의단체인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격상해 다양한 권한을 주는게 골자다. 그 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가진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단속권을 위탁하는게 핵심이다. 교란행위라는게 무엇인가. 전세사기를 동조한 행위도 교란행위에 해당하지만 중개료를 적게 받는 것도 교란행위라고 볼 수 있다. 직방, 다방, 호갱노노 등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행위에 해당한다. 눈에 가시 같은 이들을 엄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1년 2개월동안 잠들어 있던 법안을 끄집어냈다. 그 기간 동안 스타트업 업계에는 대소사가 있었다. 로톡과 타다가 대표적이다. 타다는 대법원 판결로 무죄가 확정됐고 로톡은 법무부가 로톡 이용 변호사 징계를 철회했다. 그런 동안 로톡은 규모가 반토막 이하로 줄었고 타다는 서비스를 접었다. 이재웅 쏘카 전 대표는 “혁신은 죄가 없지만 기득권 편에 선 정치인들은 법을 바꿔 혁신을 주저 앉혔다”고 일갈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직능단체 눈치를 본다. 갑작스레 꺼낸 공인중개사법 개정안도 그 일환일 것이다. 개업 공인중개사수만 11만명이고 자격증을 보유한 이들은 52만명이다. 이들을 자극해 표를 얻겠다는 것 외엔 명분이 없어보인다. 교란행위에 대한 징계는 어차피 사후 조치다.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하든 협회가 하든 사전에는 방지할 수 없다.
정치권의 눈치는 이것 만이 아니다. 이른바 '로톡법'이라 불리는 변호사법 개정안과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여야가 슬그머니 논의를 중단했다. 총선을 앞두고 관련 협회와 직역단체 표심을 잡으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로톡법과 비대면 진료법은 올해 정기국회 중점 법안으로 지정해 놓고도 법안 처리에 미진하다. 로톡법의 핵심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부여한 변호사 광고 규제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안 내용과 상반된다. 비대면 진료법은 2년이 넘도록 소관 상임위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섬이나 벽지 거주자뿐만 아니라 고혈압, 당뇨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자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법률, 의료 등 국민의 보편적 서비스 개선을 위한 것이지만 총선이 코 앞인 이상 논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혁신, 쇄신이 요즘 화두다. 기업은 안갯속인 내년을 위해 몸부림 친다. 정치권도 합세했다. 4월 총선이 당면 과제다. 당장 공천을 받아야 지역구 표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관람자가 모르던 수를 내놓은다면 묘수다. 하지만 이미 노출된 수싸움은 꼼수다. 3년 전 타다 금지법이 다시 생각나게 한다. 지난 6월 대법원 판결 이후 했던 반성은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겠다.
정권은 영원할 수 없고 그 정권을 쟁탈하려고 하는 정당도 영원할 수 없다. 선택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진정한 만족이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김정희 기자 jha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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