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바이오 측정표준

배영경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그룹장
배영경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그룹장

고작 몇 개월 전만 해도 우리는 서로를 만날 때 마스크를 써야 했다. 가끔 코로나 임시선별검사소에 다녀오게 될 때면 심판을 앞둔 심정으로 마음을 졸이며 PCR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신속항원검사 혹은 자가진단키트가 시판되고부터는 곧바로 결과를 알 수 있게 됐지만, 그 결과가 음성인 경우에도 뉴스가 알려주듯 허다한 위음성(실제 감염됐는데 음성 판정을 받는 경우)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만약 미래에 또 다른 팬데믹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법이 바로 마련된다면 암울한 상황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병원체 진단법 개발에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검사 대상인 유전자·단백질 등 바이오물질의 '측정표준' 확보다.

올해 11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최된 국제도량형위원회 물질량자문위원회(CCQM) 연례 가을 회의에서도 새로운 팬데믹 발생 시 대응 방안이 주요 안건으로 제시됐다.

CCQM 회의는 전 세계 바이오 측정표준 전문가들이 모여 인류 삶의 질과 직결된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미래 팬데믹 대응이 측정표준의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도전과제 중 하나라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증 진단은 특정 바이오물질을 검출하고 정량 측정하는 행위다. PCR 검사는 해당 바이러스 고유 유전자가, 그리고 신속항원검사는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단백질이 샘플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한다.

이 진단키트들은 기본적으로 정확성, 신속성, 경제성 등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진단키트 성능과 신뢰성은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실제 PCR 검사 데이터는 양성과 음성을 흑백으로 뚜렷이 나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가짜음성 혹은 가짜양성이 나올 확률을 최소화하고, 정확한 정량적 판단의 기준 즉, '측정표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측정 기준인 표준물질이 필요하다.

표준연 바이오분석표준그룹에서는 이처럼 바이오물질 측정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한 표준물질을 개발한다.

지난 팬데믹 초기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표준물질을 개발해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산업계와 코로나 유전물질을 연구하는 연구실에 보급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미래에 신종 감염병이 확산될 경우 신속하게 진단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적 대응 시스템의 구축에 힘쓰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첨단바이오'를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선정한 것 역시 팬데믹을 거치며 이러한 감염병 대응 시스템 마련에 첨단바이오기술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전반의 축적된 기량을 바탕으로 한 첨단바이오 산업은 공중보건 및 국민안전과 직결돼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투여받은 RNA 백신 등 첨단 백신은 코로나 팬데믹을 종식으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는 세계 첨단바이오 기술력과 자본력이 총동원돼 이뤄낸 성과다.

국내 독자적 첨단백신 개발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바이오물질의 측정이라는 탄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표준연은 유전자, 단백질, 세포 등과 같은 기본적인 바이오물질 측정기술을 발전시키며 국제 측정표준 확립을 선도해 왔으며, 이를 토대로 한 발 더 나아가 첨단백신, 바이러스 벡터, 바이오의약품 정밀분석과 측정에 도전하고 있다.

표준연 바이오분석표준그룹이 확립하는 측정표준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첨단바이오 산업에서 널리 활용되길 기대한다.

배영경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바이오분석표준그룹장 ybae@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