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지금 준비해도 늦다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홍길동 씨는 외벌이 4인 가족 가장이다. 월 500만원 봉급을 받고 있지만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이다. 홍길동 씨가 살고 있는 주택은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천장에 누수가 생기고 수도관에서는 녹물이 나오기 일쑤다. 인테리어 업체에 물어보니 수리에 5000만원이 소요되는 데 공사 소음 관련 옆집의 동의를 받아와야 공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홍길동 씨는 당장 목돈이 없을뿐더러 2억원 빚을 지고 있어 추가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홍길동 씨의 상황은 국가 전력망을 구축, 운영하는 한국전력공사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 해상풍력, 원전 등 무탄소 전력을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 적기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력망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과도한 부채, 낮은 주민 수용성 등으로 신규 전력망 구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는 한전이 건설 계획과 운영을 총괄한다는 전제로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민간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제정해 각종 인·허가 취득이나 주민과 협상을 한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범부처 전력망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는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대책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정부 재정 투입, 민영화 우려 등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국가 기간 전력망 구축에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전이 민관협력 한 형태인 시장형 공기업이라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한전의 재원 부족 문제는 자체 경영혁신이나 전기요금 조정 등을 통해 해결해야지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해결할 사항은 아니다. 이는 진즉 분가한 홍길동 씨에게 연로한 부모님이 돈을 대라고 하는 격이다. 부모님도 쓸 돈이 부족한 상황이다.

둘째, 민간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송전사업 민영화를 위한 통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전력망 구축은 한전의 존재이자 고유 업무다. 한전에 자금 여력이 있고 전력망 구축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기존 방식대로 추진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전 재원 부족과 지역 주민 반발 등으로 기간망 구축이 어려운 여건에서 건설단계에서 한전-건설사간 계약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국방정보통신망 구축, 국공립대학 기숙사 건설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선(先)구축-기부체납-후(後)정산 방식 등을 적극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경우에도 어차피 기간망 소유권은 유일한 송전사업자인 한전이 가지고 있다. 민영화와 같은 전력산업 거버넌스를 변경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다.

셋째, 민간 활용 확대가 전력망 구축 비용을 증가시키고 이에 따라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한전이 전력망 구축 총사업비를 추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공모를 거친다면 건설사업자 간 경쟁으로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오히려 전력망 구축이 장기간 방치되면 추후 막대한 구축 비용이 소요되고 이는 전기요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력망 위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며 당장 해결해야만 시급한 문제다. 비현실적인 주장, 과도한 우려보다는 전력망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다. 특별한 시기에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국가적 난제인 전력망 문제를 해결하도록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되길 바란다.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yspark@kog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