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글로 검색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상담하고, 중국 알리익스프레스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게 일상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정부가 정말 우리나라 정부가 맞습니까. '공정함'에만 매몰돼 해외 기업에 국내 시장 빗장 열어주는 '호구'가 되는 것을 자처하겠다는 정도입니다. 이는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상공인 표심을 얻기 위해 미래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기업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9일 추진을 발표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에 대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플랫폼 업계는 공정위의 새로운 규제 발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플랫폼 기업에 '제초제', 혁신기업 성장 막는 '악법' 될 것
플랫폼 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공정위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이 기업의 성장을 막는 제초제이고 혁신기업의 성장과 투자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자율규제 방침 속에서 나온 사약과 같은 과도한 사전규제라서 당혹스럽다”라며 “설명회 등 업계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너무 갑작스럽게 공정위가 안을 만들어서 나온거라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은 이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고, 유튜브가 우리나라를 장악한 것은 유튜브 대적할 플랫폼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몇 안되는 플랫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이들을 지배적 플랫폼으로 규정해 옥죄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플랫폼 기업 관계자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절대 악이 아닌데 마치 악인 것처럼 몰고가는 정부의 행태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며 “자국 플랫폼 기업을 키우며 플랫폼 제국주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시장은 보지 않고 선거 표심에만 매몰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거 같아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을 배려해 공정한 경쟁을 위해 규제를 만든다지만, 정작 스타트업이 유니콘이되고 대형 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투자 받고 성장하는 길을 가로막는 법이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무한 경쟁 플랫폼 시장에 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
국내 플랫폼 시장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과 무한 경쟁 상황에 놓여있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안은 몇 개의 국내 플랫폼 기업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이며, 해외 빅테크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내 산업 경쟁력 악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은 구글(검색엔진), 넷플릭스(OTT), 메타·인스타그램(SNS), 알리익스프레스(쇼핑) 등 해외기업들의 시장점유율 확대는 물론 일부 산업에서는 이미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할 때에 오히려 과도한 규제 도입으로 국가 경쟁력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안은 자국 플랫폼에만 과한 규제를 적용할 우려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미 해외 빅테크들의 디지털 활동이 활성화된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성장에 캡을 씌우게 되는 등 산업 악영향이 걱정된다.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정부의 플랫폼 기업 규제는 항상 국내 기업들에게만 엄격하고 해외 기업들은 규제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 역시 만들어지면 국내 플랫폼 기업이 새로운 혁신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걸림돌이 되고, 그 사이 국내 규제를 무시하는 해외 기업들이 세를 넓히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법이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게 돌리는 것 외에 현행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령과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플랫폼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거나 불공정 거래하는 경우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충분히 제재 가능하다.
업계는 국내 거래금액이 200조원이 넘는 온라인 커머스 시장은 사실상 완전경쟁 상태로 특정한 온라인 플랫폼이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단순히 매출액과 이용자 수 규모 등으로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는 형태로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경쟁제한성 판단 등을 전제로 하는 현 공정거래법과도 다른 방향이다.
◇미국·중국 자국 플랫폼 우대, 유럽·일본은 플랫폼 규제
미국과 중국 등 빅테크를 보유한 국가에서는 플랫폼 기반 AI 분야 경쟁력이 국력이라는 판단하에 자국 플랫폼 규제를 없애고 진흥책을 펼치고 있다. 올해 미국 의회에 발의된 빅테크 규제 법안 6개 중 5개가 폐기됐다. 빅테크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예상됐으나, 틱톡·핀둬둬 등 미국 내 중국 플랫폼의 선전으로 인해 AI 기술 패권에 대한 위기감 생성되며 자국 빅테크 기업 보호로 선회하고 중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다. 최근 '플랫폼 기업의 발전 및 고용, 국제 경쟁력 확보 추진'을 선언 등 미국 기업과 AI 기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자국 기업 키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중국 내 챗GPT 형태의 AI를 개발 중인 기업은 바이두·알리바바 등 12개에 달하며, 틱톡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수집한 학습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
유럽은 미·중 빅테크에 대한 포괄적 사전규제를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했다. DMA는 시가 총액, 유럽경제지역 내 매출 규모, EU 내 월간 사용자 수 등 여러 기준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한다.
대표적인 적용 대상은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틱톡 등이다. 일본 역시 애플 앱스토어 및 구글 검색 서비스에 대한 규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빅테크에 거래 조건 등 정보 공개 의무화를 한 '디지털 플랫폼 거래 투명화법'에 이은 제2의 글로벌 빅테크 규제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만든 국가들의 공통점은 자국 플랫폼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DMA법을 제정한 배경을 '브리쉘 이펙트'라고 해석한다. 자국 플랫폼 기업이 없기 때문에 규제를 통해 미국과 중국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토종 플랫폼 기업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DMA법을 벤치마킹해 규제를 신설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선택이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