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이 기나긴 침체에 빠진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인공지능(AI) 분야다. AI 유니콘 가운데 약 25% 가량이 2022년 이후 등장했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AI는 큰 화두다. 모든 고성장 분야가 그렇듯 AI 분야 역시 파괴적 혁신에 대한 기대감과 과대평가라는 시선이 공존한다.
◇성숙기 접어든 AI 기술, 빅테크가 주도하는 AI 투자 시장
미국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AI 및 기계학습 분야에 대한 벤처 투자는 약 221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 1650개 기업에 투자가 이뤄졌고, 기업가치도 직전 분기 대비 34.1% 성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간 AI분야에 대한 투자가 주로 초기 분야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빅테크 기업 주도로 후기 단계 AI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실제 아마존은 지난 9월 미국 생성형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에 40억달러를 투자했다. 앤트로픽은 오픈AI 출신 개발진이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생성형AI 최강자인 오픈AI 경쟁자로 꼽힌다. 앤트로픽은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와 AI칩을 이용해 새로운 AI 모델을 개발하고, 아마존은 자사 기업용 AI 서비스에 엔트로픽의 챗봇 '클로드2'를 통합해 제공할 계획이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에 100억달러를 투자한 것 외에도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AI 챗봇 개발사 인플렉션AI에 13억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 10월까지 전체 AI 투자액 231억달러 가운데 65% 가량을 빅테크 기업이 투자한 셈이다.
이처럼 빅테크 주도로 주력 AI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동안 벤처투자업계의 지난해 AI 투자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피치북에 따르면 VC의 3분기까지 총 누적 투자액은 687억달러로 전년도 927억달러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투자기업 수도 8600여개에서 5200여개로 줄었다. 2023년 전체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2022년 투자 규모를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피치북은 관측했다.
빅테크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늘어나고, 벤처투자시장 투자가 감소하는 원인을 시장 안팎에서는 AI 기술이 성숙기에 접어든 영향으로 꼽고 있다. 실제 투자 유형도 특정 분야로 쏠리는 분위기다. 오디오나 언어 등에 범용으로 쓰이는 미들웨어가 아닌 AI 핵심 기술을 보유했거나, 실질적인 AI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분야에 자금이 쏠린다.
텍스트로부터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개발사 미드저니(Midjourney)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드저니처럼 생성형AI를 통해 명확한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는 분야에 업계 관심이 쏠리는 셈이다. 실제 피치북 집계에 따르면 총 33개 분야 AI 항목 가운데 2022년 수준으로 지난해 신규 투자가 올라온 분야는 18개 영역에 그친다.
이처럼 특정 영역으로 투자업계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얻는 분야는 단연 코딩 자동화 분야다. 피치북 집계에 따르면 올해 코딩 자동화 분야에 대한 3분기 신규 투자는 전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한 3억6910만달러를 기록했다. 개별 영역 단위에서는 에듀테크, 핀테크, 법률, 산업 분야에서 전년 대비 두배 이상 투자가 늘었다.
◇오픈AI와 경쟁할 LLM 기반 스타트업, AI 플랫폼에 투자금 집중
이처럼 AI를 둘러싼 투자 시장이 다각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유니콘으로 새롭게 등극한 기업은 15개 안팎이다. 거대언어모델(LLM)을 제공하는 AI스타트업이나 AI 플랫폼 기업이 주로 시장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캐나다 생성형AI 스타트업 코히어(Cohere)는 지난해 6월 엔비디아, 세일즈포스, 오라클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앞서 MS-오픈AI, 아마존-엔트로피 같은 빅테크 분야에서 협력 모델이다. 오라클은 코히어와 협업한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 생성형 AI' 서비스를 선보이며 여타 빅테크 기업과 유사한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델 테크놀로지도 미 샌프란시스코 기반 생성형AI 스타트업 유니콘 임뷰(Imbue)와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고성능 컴퓨팅 클러스터 구축 계약을 체결하며 협업 체계를 꾸려가고 있다. 임뷰 역시 지난 투자 유치 과정에서 엔비디아가 주요 출자자로 참여했다.
중국 역시 AI 투자에 한창이다. 중국 스타트업 지푸(Zhipu)도 텐센트와 알리바바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유니콘기업에 올라섰다. 지푸는 현재 '챗GLM2-6B'를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설립된 중국 스타트업 라이트이어비욘드(Light Years Beyond)도 생성형AI를 개발한다. 중국의 배달의민족이라 불리는 메이퇀은 이 회사 지분 100%를 사들였다. 중국 역시 빅테크 중심으로 투자가 활발하다.
2017년 창업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AI21랩스도 LLM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삼성의 해외투자 조직인 삼성넥스트가 이 회사 리드 투자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유니콘으로 등극한 AI 플랫폼 면면은 더욱 다양하다. 리플릿(Replit)은 AI에 기반한 코드 생성 서비스 '고스트라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코드 생성 분야 AI 스타트업 대표주자다. 깃허브, 아마존 등이 해당 분야에서 이미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 조사에 따르면 모든 코드 가운데 절반 이상이 AI를 통한 코딩으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될 만큼 기대감이 큰 분야다.
독일 딥엘(DeepL)도 지난해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딥엘은 AI를 활용한 번역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글과 경쟁에서도 승리할 만큼 높은 기술력을 보유했다. 어뎁트AI(Adept)는 AI로 사람과 컴퓨터 간 소통을 돕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음성이나 텍스트로 명령하면 사람처럼 컴퓨터가 작업을 수행한다. 캐릭터.AI는 캐릭터 기반 챗봇 대화서비스다. 유명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를 대화 상대로 설정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타이프페이스는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콘텐츠를 제작해 주는 생성형AI다. 그래프나 워크플로우 등을 생성할 수 있다.
이 밖에 비디오 생성 AI 스타트업 '런웨이(Runway)'와 '신디시아(Synthesia)', AI에 초점을 둔 클라우드 스타트업 '코어위브(Coreweave)', 영국 AI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콴텍사(Quantexa)', 독일 국방 AI '헬싱(Helsing)'이 지난해 AI 유니콘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