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 지휘봉을 잡자마자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 특검)'에 대한 본회의 표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탈당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이 고심 끝에 묘수를 내놓을지 관심이다.
한 위원장은 27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건희 특검은) 총선용 악법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앞서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에도 김건희 특검을 악법으로 규정한 바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이후에도 법안 통과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국회는 28일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처리한다. 해당 법안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고 이날 자동으로 상정돼 표결을 거친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에 대한 여론을 고려해 이를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위원장은 실제 표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건의 등 정치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위원장은 이날도 “아직 통과가 안 됐으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이를 늦출 수는 있지만 의석수 차이 때문에 통과 자체를 저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특검법 도입에 대한 국민적 의견이 과반을 훌쩍 넘은 탓에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것도 부담이다. 한 위원장이 결국 거부권을 건의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되는 배경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검 수용을 건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선용 악법'을 부각한 뒤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여론 탓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만큼 민주당에 끌려다니는 이미지를 주기보다 능동적으로 정국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해석이다.
탈당을 공식화한 이준석계와의 관계 설정도 부담이다. 이 전 대표가 '세대 포위론' 등을 통해 '젊은 보수'의 이미지를 앞세웠던 만큼 차기 총선에서 보수의 표심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에서 “저는 오늘 국민의힘을 탈당합니다. 동시에 국민의힘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다만 한 위원장은 이 전 대표와는 선을 그었다. 한 위원장은 “정치 교체의 열망은 100%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한 세대 포위론·교체론이란 말을 신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누군가에겐 정략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세상에는 해로울 수 있다”며 사실상 이 전 대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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