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낮은 수준의 전기요금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소비자에게 줄 필요가 있습니다. 향후 상당 기간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에 대해 전기요금 정상화로 대응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기요금의 가격 시그널을 강화하면 산업계를 포함한 소비자들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위 말하는 '정공법'으로 한전의 현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 교수는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한전에 대한 규제체계도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공기업이 전력을 공급하면 당연히 저렴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전력구입비를 조달하는 것도 힘에 부친 한전이 이런 대규모 투자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8년생 정 교수는 에너지 분야에서 주목받는 젊은 전력 전문가다. 특히 전력시장과 전기요금, 전력경제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로 꼽힌다. 연료비 연동제, 기후·환경요금 등을 반영한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 등 정부 정책 설계에도 다수 참여했다.
정 교수는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전기요금 거버넌스 등에 대해 연구하다가 3월부터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 산업과 정책 참여 보폭이 넓어졌다. 에너지 업계는 정 교수를 우리나라 전력시장이 '비용기반시장(CBP)'에서 '가격입찰제(PBP)'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로 꼽고 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시장에 기반한 에너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한전 등 공공 부문이 에너지 산업을 주도했었지만 향후에는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시장원리에 기반한 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과거와 달리 에너지 산업은 민간 역할이 커졌으며 공공 부문을 통해서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특히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보다는 시장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여전히 공공 주도로 운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정 교수 지적이다. 그는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 기조가 대폭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교수는 “최근 논의되는 도매시장 개편, 독립 규제기관 설립, 판매 부문 경쟁 도입 등은 20년 전부터 얘기되던 것들”이라며 “특히 전력 부문은 정부 영향력이 아주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잘 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정부가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정부가 일관된 에너지정책을 추진하면서 민간 투자 동력을 살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정부 정책을 믿고 투자한 사업자들은 정권 변화에 따라 혹은 국제 정세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변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면서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면 에너지 부문에 대한 민간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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