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급격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초거대AI, 메타버스,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SW)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발전으로 인해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디지털 전환 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 SW는 단순 용역이 아닌 지식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최근 디지털 전환 및 산업간 융합을 촉진하는 국가 핵심기술로서 그 어느 때보다 위상이 부각되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높고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흔히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거나 SW를 구매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건물을 지어놓고 방치하면 시설 문제와 더불어 구조적 안전을 담보할 수 없듯이 SW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운용체계(OS)를 비롯해 연관되어 있는 SW의 버전업, 정책 및 법제도 등의 환경 변화에 따른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또, 챗GPT 등 AI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성능 업그레이드 등 자체 기술력 향상을 반영하는 주기적 업데이트가 고려돼야 한다. SW기업에 지불하는 유지관리비가 유지관리에 소요되는 직접인건비를 포함하지만 연구개발비의 성격으로도 보는 이유다.
작년 국가 행정전산망 마비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오류 등과 같이 공공 시스템 장애 이슈는 SW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유지관리 사업은 공공 SW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 부문 유지관리 대상 시스템은 다양한 SW가 조합·결합돼 만들어진 통합시스템이다. 발주기관 고유의 업무 특성을 반영한 정보시스템과 해당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한 OS, 데이터베이스관리(DBMS), 전사자원관리(ERP) 등 전문 분야에 특화된 수십 가지 상용SW가 포함돼 운영된다.
그간 공공부문에서는 발주와 사업관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통합시스템을 구성하는 SW에 대해 한꺼번에 턴키로 유지관리 사업을 발주하는 통합유지관리사업 방식을 활용해 왔다. 통합유지관리 사업은 통합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과 모든 SW가 통합돼 문제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개선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에 따라 SW기업은 기존 정보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력과 인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그간 SW 업계가 지속적으로 제도 개선을 요청했던 문제 중 하나는 유지관리요율에 관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외산 대비 국산 SW의 유지관리요율이 현저하게 낮다는 점과, 통합유지관리 사업에 예산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통합유지관리 사업은 대체적으로 기술력보다 가격으로 결정되며, 대부분 저가로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통합유지관리 사업을 총괄하는 통합사업자는 저가로 수주한 사업비에서 유지관리요율이 22~25%에 달하는 외산 SW에 비용을 먼저 지급한 후, 나머지 금액을 국산 SW에 지급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12~20%의 범위 내에서 상용SW 유지관리비가 책정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외산 SW의 절반 수준인 11.2%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합유지관리 사업에서 국산 SW기업이 낮은 유지관리요율을 적용한 대금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되고 연구개발비가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국산 SW의 낮은 유지관리요율 문제는 통합유지관리 사업에서의 기업 간 수익 배분 과정에서도 야기되고 있다. 통합사업자가 통합관리비 명목으로 국산 SW 유지관리비 일부를 통합관리비 명목으로 떼어낸 후 유지관리 비용을 배분하는 계약관행이 아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산 SW 기업 입장에서는 외산 SW의 높은 유지관리요율과 통합관리비로 인해 낮은 대금을 받고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관리비 문제를 통합사업자의 탓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합사업자는 전체 사업을 운영 및 관리하고 발주기관의 요구사항을 통합.분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업그레이드와 같은 난이도 있는 과업이 함께 따라오거나, 발주기관의 요구에 따라 유지관리 개발 인력이 현장에 상주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SW 유지관리 대가에는 위와 같은 통합사업자의 관리비 또는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를 고려할 수 있는 비목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지관리요율에 따라 적정 사업금액이 책정되더라도 예산상에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통합유지관리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외산 SW 유지관리 사업의 분리발주다. 외산 SW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높은 유지관리요율이 관철되는 이유는 해당 SW가 중요 업무에 도입된 경우가 많고 대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지관리요율이 과도하게 높은 외산 SW에 대해서는 발주기관이 개별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여 발주기관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두 번째는 예산 사각지대에 있는 통합사업자의 통합관리비를 분리하여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그동안 유지관리비 일부를 통합관리비 명목으로 떼어왔던 관행을 타파하고, 국산 SW기업이 정당한 유지관리 사업비를 받기 위해 예산계획 수립 시 통합관리비가 고려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합관리비가 기존 예산규모에서 할당되는 것이 아닌 추가 예산 확보, 즉 예산 순증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추정했을 때 통합관리비를 별도의 예산으로 분리하는 경우, 유지관리 사업 예산은 약 5~10%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중심에 있는 SW산업은 미래에도 전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중요한 산업이 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SW산업이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간 공공 SW 장애 이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유지관리 사업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행정 전산망 장애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가격 경쟁력보다는 기술력에 집중하여 품질 이슈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공공정보화 사업의 유찰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통합유지관리 사업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 이슈가 발생해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알게 되는 통합유지관리 사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화 예산이 합리적으로 적재적소에 투입돼야 하며, 무엇보다 SW기업이 정당하게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번 장애 사태가 단발성으로 이슈화되고 예산 증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장애가 반복될 것은 자명하다. 필자가 주장한 바와 같이 충분한 예산 증액 및 확보를 통해 적재적소에 정보화 예산이 투입되어 공공 정보화시스템 장애 사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기반으로 국산 SW 유지관리요율이 외산 SW 수준으로 상향될 수 있도록 국내 SW기업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3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다. 2021년 2월 법정단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대 회장으로 취임, 올해 2월 19대 회장으로 연임하며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 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사외이사로 있다. 재작년 9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데 이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국무총리실산하 데이터기반행정활성화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돼 SW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