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심리 위축에 따른 악영향이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VC)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펀드 출자자 확보에 난항을 겪으면서 운용사 자격 반납부터 핵심 인력 이탈까지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제1차 중견기업 혁신펀드의 위탁운용사(GP) 재모집에 들어갔다. 성장금융은 오는 15일 출자설명회를 열어 선정 절차를 재개할 계획이다.
대성창업투자가 GP 자격을 반납한데 따른 절차다. 결성식까지 마친 뒤 GP자격을 반납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성창투는 앞서 결성을 추진하던 모태펀드 K-콘텐츠 펀드 역시 GP 자격을 내놨다. K-콘텐츠 펀드 결성이 무산된 이유 역시 출자자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대성창투는 앞으로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 1년간, 성장금융 출자사업에도 최대 3년까지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박근진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고, 펀드 결성 관여한 인력 다수가 퇴사하는 등 후폭풍이 상당하다.
대성창투가 이런 제재를 감수하고서라도 GP 자격을 반납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벤처투자 시장의 출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당초 대성창투는 1100억원 규모를 목표로 혁신펀드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200억원을 직접 출자할 계획이었다. 전체 결성 금액의 약 20%에 상당하는 큰 금액이다. KB증권이 공동 운용사로 이름을 올린 이유도 대성창투의 높은 GP 출자 비중(GP커밋)에 신뢰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초 계획만큼 민간 출자자가 모이지 않으면서 GP커밋이 더 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모회사의 추가 출자까지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결국 GP자격 반납을 택했다. 이미 2022년 1100억원 규모 메타버스 펀드를 결성하는 과정에서도 대성홀딩스 등 관계사의 출자가 이뤄졌던 만큼 추가 자금 투입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대성창투 관계자는 “시장 불황으로 출자자 모집이 어려워진 영향이 크다”면서 “앞서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별도 계좌에서 관리하고 있는 만큼 추후 프로젝트 펀드 등을 결성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자심리 위축으로 출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운용사는 대성창투 뿐만이 아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위탁운용사를 선정한 모태펀드 2차 출자 사업은 운용사 수만도 42개사에 이른다. 42개 운용사가 5000억원 이상의 출자금을 민간으로부터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해를 넘어가면서 벤처펀드에는 추가 출자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금융권도 속속 늘어나는 분위기다. 연말연초를 넘기면서 금융권의 투자 전략도 바뀌는 셈이다. 부동산, 한계기업 투자 등 정책 목적 모펀드가 신규로 조성되고 있는 상황 역시 출자자의 벤처펀드 출자를 위축시키는 이유로 꼽힌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모태펀드 출자 사업에 선정된 운용사 다수가 추가 출자자를 구하지 못해 펀드 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중소형사는 물론이고 대형사마저도 모회사에 손을 벌려야 하는 만큼 펀드 결성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