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무대리 업무를 둘러싼 세무 플랫폼과의 갈등은 세무 업계에 큰 울림을 던졌다. 그간 세정 현실에 맞지 않았던 각종 법령에 대한 보완은 물론, 그간 납세자들이 세무업무에 많은 불편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적극적으로 납세자의 불편을 줄이는 것은 물론 수월하게 국가 납세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세전문가로서 세무사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세정 현장을 채웠다.
지난해 7월 한국세무사회 제33대 회장으로 취임한 구재이 회장은 세무 현장 변화를 일선에서 이끄는 주역이다. 세무사직무종합플랫폼 구축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세무사 직무의 재분류와 법정보수기준 제정을 위한 세무사법 개정 등 해묵은 과제를 차례차례 해결하고 있다. 취임 당시 일성으로 내건 '사업현장, 세무사회, 세무사제도의 3대 혁신을 통한 세무사 황금시대 달성'이라는 목표가 허언이 아니었다는 평가가 세무사회 안팎으로 이어진다.
구 회장은 “지난 6개월의 활동으로 세무사 황금시대를 만들기 위한 예열 작업을 마쳤다”면서 “세무사가 국민의 절세 컨설팅 업무 뿐만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세금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최고의 조세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 = 길재식 디지털금융본부장
-한국세무사회는 어떤 일을 하는지 우선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한국세무사회는 1961년 세무사법에 따라 창설됐다. 회원수 1만6000명의 세무사로 이뤄진 공공성을 지닌 전문가 단체다. 본회와 7개의 지방세무사회 및 사무처 직원이 하나가 돼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고 조세제도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난해 7월 회장 취임 이후 제33대 한국세무사회를 함께 이끌어갈 집행부를 구성하고, 국민과 납세자를 위한 세무사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민과 납세자 권익보호를 위한 불합리한 제도 개선 건의 및 세법 연구, 납세자를 위한 홍보 활동, 사무소 직원인력난 해소를 위한 직원양성 교육, 회원들의 사업현장 발전을 위한 직무플랫폼 구축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조세제도와 세무행정 발전에 필수적인 세무사 회원에 대한 등록과 징계 등 회원 관리와 감독, 직무에 대한 감리정화, 직무품질을 높이는 컨설팅 회원교육, 회계, 세무프로그램 보급 등을 담당한다.
-올해 세무사회 역점 사업은.
▲회원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사업현장을 제대로 바꾸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세무사는 기업의 경영관리 업무 대부분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간 제대로 된 리포트 하나 없을 정도로 사업 현장의 문제가 많았다. 기장료가 전부인 사업현장 직무와 보수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목표다. 법정직무를 통한 성실납세가 담보되도록 하는 법정보수기준의 제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불합리한 세금제도 개선운동도 주도할 계획이다. 납세자 권익보호자인 세무사로서의 법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국회가 바꾸지 못하는 부분을 바꿔 나가겠다. 국민 부담과 불편을 덜고 세제 세정을 선진화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개선해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최고의 조세전문가로서 위상을 확립하겠다.
-취임 6개월이 지났다. 소회는.
▲회장 선거가 상당히 치열했다.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감을 밝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7월 3일 정오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식도 없이 집무에 돌입했다. 즉각 부회장 2명, 상임이사 10명 등 집행부를 구성하고 40명의 이사, 30여명의 위원장을 선임해 집행부를 구성했다. 취임 18일 만에 제33대 세무사회 출범식도 가졌다.
대내외적으로 누적된 고질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제 '세무사 황금시대'를 위해 달리기 위한 예열을 끝냈다. '세무사 제도 혁신 5대 아젠다와 비전'도 확립했다. 추진 방향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쉼 없이 달리는 중이다.
이제는 어떤 주저함이나 고민 없이 세무사 황금시대를 위한 '세무사 사업현장, 세무사회, 세무사 제도' 개편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단계다.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있다.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무부문 디지털 고도화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국세청에서도 홈택스를 도입해 납세자의 간편한 이용을 돕고 있다.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는 삼쩜삼과 같은 세무플랫폼은 기술 발전이나 혁신이라기보다 국세청에서 이미 하고 있던 일, 세무 행정 차원에서 조금 미비했던 부분을 연결했던 홈택스를 편의적으로 이용한 수준에 불과하다.
세무사회에서 추진하는 방안은 세무사가 가진 직무 능력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납세자와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AI, 빅데이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1만6000여 세무사가 보유한 각종 신고자료와 세무 자료 데이터를 집적해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회원들이 사업현장에서 꼭 필요한 세무포털, 스마트오피스, 경영관리, 감면컨설팅, 컨설팅리포팅, 공공플랫폼 기능까지 갖춘 세무사직무 종합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세무사의 생존권이 걸린 당장의 과제다. 세무사회 전산법인 한길TIS와 협업해 데이터 기업을 만들고 이를 통한 컨설팅을 세무사의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성장시켜 나가야 할 때다.
-최근 플랫폼 업체의 세무사법 위반 여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세무사회 입장과는 상반된 결과다. 어떻게 보는지.
▲삼쩜삼의 세무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개인정보위원회 조사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채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지난달에 이미 항고장을 제출했다. 삼쩜삼 이외에 다른 세무플랫폼 역시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세무사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례도 많다.
검찰은 삼쩜삼의 사례에서 환급신고 등을 납세자가 직접 했다고 본다. 또 대가를 세무대리 보수가 아닌 프로그램 이용료로 받고 있어 세무사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명백하게 정부 입장과 차이가 있다.
지난해 6월 개인정보위원회 조사결과만 봐도 삼쩜삼 주장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삼쩜삼의 환급신고서비스는 납세자가 '간편인증 회원가입'만 할 뿐 국세청 홈택스 로그인, 소득자료 등의 접근, 신고서 작성 및 제출 행위 모두 삼쩜삼이 직접 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삼쩜삼 등 세무플랫폼의 행위가 세무사법에 따라 납세자 권익보호와 납세의무의 성실한 이행에 이바지하도록 한 세무사 법적 사명을 정면으로 저해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세무플랫폼은 세무사처럼 공인된 세무전문가가 아니다. 최대환급, 최소세금과 불간섭을 통한 간편성을 추구하면서 불성실신고를 조장할 소지가 있다.
더구나 삼쩜삼이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1650만명 회원들의 개별 납세정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국세기본법상 비밀유지 규정에 위배되는 일이다. 국가재정수입과 국민의 성실납세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심각한 국기문란행위다.
단적으로 국정감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모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데 맞느냐는 질문에도 국세청장은 답을 할 수가 없다. 개별 납세자의 과세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1650만명에 이르는 개별 과세 정보를 쥐고 사업을 벌이고 상장까지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개인정보만도 위중한 문제인데 과세 정보는 더욱 민감하다.
-세무사회의 중장기 전략이 있다면.
▲앞서 말한 세무사직무 종합플랫폼 구축과 연결된 과제다. 세무사 보수체계 대혁신을 추진하고자 한다. 합리적이고 적정한 보수기준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기장대행이나 세무조정 등 세법에서 성실신고를 위한 세무사 법정직무를 감정평가사 국토부 보수기준처럼 국세청이 제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 법정직무 외 경영관리, 컨설팅 보수는 수행범위와 직무품질에 따라 얼마든지 보수추가와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세무사법 개정 입법을 위해 힘쓰겠다. 법적 근거를 통해 법정보수기준을 제정하면 덤핑이나 무상수행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납세자 권익과 성실한 신고납세 공공성도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행정력에 의한 세무조사 대신 전문가에 의한 검증제도 확대 같은 국민과 정부, 세무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세정 패러다임으로 대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제·세정당국과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세무사제도 선진화와 세무대리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목표다.
-세무업계는 여전히 소규모 법인이 많다.
▲과거에는 세무사는 흩어져야 일이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기장 거래처나 세무관리 거래처가 법인 당 하나씩인데, 세무사들이 흩어져 일을 하면 5개가 되지 않겠느냐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질적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세무사들이 같이 모여서 어떤 아젠다나 사업영역을 논의하고 토론해 가면서 위험도 분산하는 식으로 컨설팅 수행 능력을 높여야하는데 그간 이런 부분이 미흡했다. AI 도입 등으로 디지털전환이 이뤄지면서 단순히 거래처를 많이 확보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질적인 서비스 영역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이다.
청년은 청년대로 역량 있는 중진은 중진대로 모여서 차별화되는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처럼 세무법인도 앞으로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야만 진짜 세무사들이 공공성 있는 조세전문가로서 사명을 다 하고, 독보적인 영역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세무법인 대형화를 위한 입법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협회장으로서 협회를 어떤 곳으로 만들고 싶은지 개인적 포부를 말씀해 달라.
▲세무사는 공공성 높은 세무전문가로서 납세자 권익보호와 납세의무의 성실한 이행을 이바지하는 것을 숭고한 법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세무사 제도의 원조는 독일이다. 독일은 대표적인 법치국가다. 나라 재정을 확보하는데 세무사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 뒤에는 세무사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미법 국가는 변호사와 회계사밖에 없지만 독일과 같은 대륙법 국가는 정부 입장에서 국가 재정 수입을 원활하게 확보하기 위해 국가 공인 자격증인 세무사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현재 세금 신고 납부의 90% 이상을 세무사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 및 전자세정 발전에 기여한 것도 세무사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무사가 없다면 우리나라의 세무행정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릴 것이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세무사로 거듭나는 것이 오랜 꿈이다. 타 자격사 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전문성과 경쟁력의 전문자격사로 우뚝 설 것으로 자부한다. 급변하는 환경과 새로운 도전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해 세무사 직무환경과 시스템을 최고의 조세전문가의 마당으로서 국민과 기업에 부족함이 없도록 설계하겠다. AI로 대표되는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고의 조세전문가로 고객의 절세컨설팅 업무에만 머무르지 않고 불합리한 것은 고치고 국민이 원하는 세금제도를 만들어 세금주권자인 우리 국민과 기업을 지키겠다.
◇ 구재이 회장은···
구재이 한국세무사회장은 국립세무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 정책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학교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가천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구 회장은 제22대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을 역임하던 2015년 당시 서울시 마을세무사 제도를 창안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세제·세정분야 전문위원, 대통령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국세청 국세행정개혁TF 위원,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정부업무평가 일자리·국정과제평가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제33대 한국세무사회장을 맡으며 세무법인 굿택스 대표이사,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장, 대한민국 국회 의정대상 심의위원,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위원회 위원,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세행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