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76%, 한국교육 문제로 ‘입시 위주 획일적 교육’을 지적
미국 대안으로 캐나다 유학 관심 높아…영주권·취업 문제는 여전히 숙제
#대기업 임원 A씨는 작년 중학생 아들을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냈다.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명확했다. 초등학교 때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들이 중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 무엇보다 A씨를 실망시킨 것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원에서 이미 선행학습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진도를 나간다는 점이었다. A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해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게 됐다”며 “주변 친구나 후배들에게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일찍부터 사교육을 시키라고 충고한다”고 털어놨다.
최근 국내 교육에 염증을 느낀 학생과 학부모가 늘어나면서 조기유학, 해외대학 진학 등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제주·송도 등 국내 곳곳에 국제학교가 속속 문을 열면서 새로운 교육에 대한 선택지가 확대된 것도 한 몫한다. 해외 대학 입시 전문가들은 “국내 설립된 국제학교에 대한 학부모 관심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영어 구사 능력을 키워 해외대학 진학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국제학교·해외대학 입학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 수는 10만명에 이른다.
◇학부모 84%, “해외 유학 고려해 본 적 있다”
에듀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에듀플러스 뉴스레터'를 통해 초·중·고 학부모 200명 대상으로 '해외 유학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84%가 자녀의 해외 유학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유학을 고려한 이유로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어서'(78%), '한국 교육과 입시에 염증을 느껴서'(12%), '영어 능력을 키워주고 싶어서'(6%), '국내 대학으로는 취업이 어려워서'(2%) 등으로 조사됐다.
응답자들은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76%)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초등학교 학부모 김지현(45세·서울 잠실)씨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이지만 현재 국내 교육의 현실은 대입을 위한 지식 암기식 교육이 계속되고 있다”며 “지금 공교육 방식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이 맞는지 자주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설문 응답자들은 '의대 등 특정 분야 쏠림'(12%), '입시 교육 외 예체능 인성 교육 부재'(12%) 등도 한국 교육의 문제로 지적했다.
해외 유학을 보내고 싶은 국가는 미국(44%), 캐나다(24%), 영국 등 유럽(24%), 싱가포르(2%) 순으로 조사됐다. 학부모들은 해외 유학을 보낼 때 고려하는 점으로 '교육 방식의 차별성'(32%), '대학 경쟁력'(28%), '입시 위주가 아닌 교육'(18%), '전공하고 싶은 분야 교육'(10%) 등을 들었다.
자녀의 해외 유학을 통해 기대하는 점으로는 '자율성, 다양성 보장 교육'(50%), '다양한 문화 경험'(22%), '외국어 능력'(20%), '해외 취업'(8%) 등이었다.
최근 눈에 띄는 추세는 캐나다가 미국 유학의 대안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수시로 발생하는 총기 사건 등으로 미국 유학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대안으로 캐나다를 찾는 학생이 늘고 있다. 캐나다 유학의 강점으로는 깨끗한 환경, 세계 대학 순위 200위 내 8개가 포진할 정도로 우수한 대학 교육 시스템, 영어·불어가 공용어로 쓰이는 점 등이 꼽힌다.
제시 박 토론토대 언론홍보담당관은 “2015년부터 한국은 토론토대에 입학한 외국인 입학생 수는 꾸준히 상위 5위 안에 들어왔다”며 “이러한 경향은 토론토대뿐 아니라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퀘벡주 등 캐나다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국제학교 발판, 해외대학 가려는 학생 늘어”
최근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국내 학생의 경로도 바뀌고 있다. 2010년 이전에는 자사고·특목고 해외 대학 진학반 입학 후 미국·영국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았다. 민족사관학교, 청심국제고, 대원외고 등에서 아이비리그,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 합격생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실제 서울·경기 지역 외고의 아이비리그 합격생 수는 2007년 49명, 2008년 52명, 2009년 74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2015년부터 제주·인천·서울 등 국내 거주자가 입학할 수 있는 국제학교가 대거 들어서면서 해외 대학 입학 경로가 국내 특목고에서 국제학교로 바뀌기 시작했다. 국제학교 입학 후, 해외 명문대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이 증가하는 추세다. 팬데믹도 국제학교 수요를 늘린 요인 중 하나다. 조기 유학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 명문 보딩스쿨 졸업 후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코로나 기간에 한국 내 국제학교로 돌아오는 리턴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상범 크림슨 에듀케이션 코리아 대표는 “코로나 시기에 국내 국제학교로 돌아오는 해외 조기 유학생이 많았는데, 최근 다시 국내 국제학교를 3~4년 다니다가 미국·영국의 중·고등 보딩스쿨에 입학해 명문대 진학을 하려는 수요가 꾸준하게 증가한다”며 “해외 유학 트렌드도 사회 현상과 맞물려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학이 장밋빛 미래만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 적응, 취업 등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 유학생이 비자 문제 등 이유로 대학 졸업 후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매년 대학을 졸업한 외국 학생 7만5000명에게 H1B비자를 발급하지만, 한해 비자 신청자만 80만명에 육박한다. 최근 우회로로 미국 투자 이민 EB5 제로를 통해 영주권을 획득하는 사례도 나온다.
미국 내 주요 취업 경로 중 하나인 인턴은, 영주권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 대표는 “미국은 인턴을 거쳐 직장을 구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유학생 신분으로 취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라며 “영주권 취득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한국 혹은 그 외 국가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을 찾아 도전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