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카 라이프, 그 세 번째 이야기는 BMW 728iL을 만난 스토리입니다. 새로운 회사 출근을 앞두고 여유 있게 쉬고 있던 2015년의 어느 날, 중고차 사이트를 기웃거리던 저는 운명처럼 어떤 차에 눈길이 멈추게 되는데요, 그게 바로 3세대 BMW 7시리즈였습니다.
1977년에 처음 태어난 7시리즈는 2세대 모델(코드 네임 E32)부터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게 됩니다. 2차 대전 후 최초로 V12 엔진을 얹었고, 벤츠 S클래스를 판매량에서 최초로 눌렀던 기념비적인 차이죠. 3세대 모델(E38)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생산되었는데,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열연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휴대폰으로 조종하던 차가 바로 3세대 7시리즈였죠.
이렇게 명차의 반열에 올랐던 7시리즈였지만, 제가 찾던 시기는 이미 단종된 지 14년이 된 후여서 상태 좋은 차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몇몇 매물 가운데 제 눈에 들어온 건 인천의 어느 중고차 업체에서 보유하고 있던 740i였습니다.
전화하고 차를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중고차 업체가 보여준 성능점검 기록부에는 '엔진 오일 누유'가 체크되어 있더군요. 분명히 온라인으로 봤을 땐 아무 결함이 없었거든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하고 물어보니, 직원은 “온라인에 서류가 잘못 올라갔다”라고 답하더군요. 그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외관은 멀쩡했습니다. 그런데 몸을 숙여서 하체를 보니 오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더군요. 실내 역시 아쉬웠습니다. 밝은 베이지 컬러 가죽이 세월이 흘러서 오염이 많이 된 모습이었어요.
결국 다른 중고차 업체에서 일하던 고등학교 동창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친구는 옆 딜러가 한 대 갖고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실제로 보러 갔더니 주차장 구석에 있더군요. 근데 먼지가 뽀얗게 쌓인 모습이 뭔가 오랫동안 운행을 안 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업체 사장은 “이 차 주인이 2001년에 뽑아서 13년 동안 몰다가 2014년에 우리 가게에서 매입했는데, 아직 주인을 못 만났다”라고 알려줬습니다.
7시리즈 특유의 멋진 외모는 여전했지만, 한쪽 펜더가 살짝 찌그러져 있었고, 제가 원하던 740i가 아니라 728iL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주인을 만나 13년 동안 봉사(?)하다가 1년 동안 주인을 못 만났다는 게 왠지 짠했습니다. 마치 유기견 보호소에서 새 주인을 못 만난 개를 본 느낌이랄까요. 카리스마 강한 7시리즈의 앞모습이 너무 처연하게 느껴졌고, 길냥이에게 간택 당하듯 이 차에 끌려서 계약서에 사인하고 말았습니다.
이 차를 갖고 와서 우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출입 등록을 했습니다. 동 호수를 확인한 관리사무소장은 “아니, 차를 세 대나 갖고 계시네요?”라며 놀라워합니다.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별로 안 비싼 중고차에요”라고 답했지만, 관리사무소장은 “와, 그래도 여유가 있으신가 봐요”라고 합니다. 더는 설명은 불필요한 거 같아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차를 구매할 때 중고차 딜러인 고등학교 동창이 찌그러진 펜더를 수리해줬고, 광택 업체에서 차 전체를 번쩍거리게 다듬어줘서 외관은 아주 멀쩡해졌습니다. 차를 인수한 김에 엔진 오일과 점화 코일, 타이어, 배터리도 새것으로 싹 교환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군요. 나온 지 14년 된 차이고, 1년 동안 멈춰있어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BMW의 차들은 각종 누유와 문드러지는 고무 몰딩이 고질병이었는데, 이 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파워스티어링 오일이 자꾸 흘러넘쳤습니다. 이 역시 이 차종의 고질병이더군요. 처음에는 오일 라인을 교체했는데, 그래도 또 넘치는 겁니다. 수리 업체에서도 원인을 잘 몰라서 일단 파워스티어링 오일을 사서 보충하면서 타고 다녔습니다.
오래된 차 특유의 꿉꿉한 냄새도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각종 방향제와 탈취제를 차 안에 갖다 놓아도 해결이 안 되더군요. 검색해보니, 어떤 오너는 차 내장을 전부 탈거하고 새것으로 교체하더라고요. 그 정도는 해야 냄새가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이건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7시리즈는 7시리즈였습니다. 렉서스 IS250을 탈 때와는 다른,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승차감에 길게 쭉 뻗은 차체가 엄청난 '포스'를 자랑했습니다. 이 멋진 디자인 덕분에 지금도 3세대 7시리즈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앞서 원래 원하던 차는 740i라고 했는데, 740i는 V8 4.4ℓ(M62TUB44) 가솔린 282마력 엔진을 얹은 차입니다. 더블 바노스 시스템을 얹어서 호쾌한 가속력을 보여주는 모델이죠. 그러나 더블 바노스 시스템을 처음 얹은 차이다 보니, 내구성은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반면에 728iL은 직렬 6기통 2.8ℓ(M52TUB28) 가솔린 190마력 엔진으로 출력이 조금 떨어지죠. 대신 V8 4.4ℓ 엔진보다 내구성이 좋았고, 별다른 말썽이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연비도 훨씬 좋았고요. 기름을 가득 채우면 주행가능거리가 999㎞까지 트립 미터에 찍힐 정도였습니다.
13년 동안 한 주인에게 봉사한 덕에 실내 상태도 깔끔합니다. 특히 가죽 시트 상태가 아주 좋아서 타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차를 탈 때 특히 기분이 좋은 건 뒷좌석에 탈 때입니다. 평소에는 제가 직접 운전하지만, 술 약속이 있는 날에는 대리운전을 불러서 뒷좌석에 앉거든요. 그러면 간혹 대리기사가 “사장님, 차 좋네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사장도 아니고,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말인 줄 알지만 “아, 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곤 어깨를 으쓱거리곤 했답니다. 대형 수입차를 타는 맛이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이렇게 저의 세 번째 차 얘기를 전해드렸습니다. 하나의 기사에 다 전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대우 레조와 렉서스 IS250, BMW 728iL 등 세 대의 차를 굴렸던 스토리는 다음에 또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자신문인터넷 임의택 기자 ferrari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