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명한 지 한 달 만에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권 주류로부터 사퇴 요청을 받았고 재차 거부하면서 정면 충돌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한동훈 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교묘히 겹치면서 총선을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맞았다는 평가다.
22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비대위원장직 수행 의지를 거듭 천명한 셈이다.
공동운명체격인 '당정'간 신뢰가 깨진 것 아니냐는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는 “여러 시각이 있겠지만 당은 당의 일을 하는 것이고, 정은 정의 일을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김건희 여사 리스크)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출근 후 비대위 회의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임했다. 이날 모두발언에서는 민주당의 이른바 '가짜뉴스 정치행태'를 비판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계획됐던 민생토론회에 불참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감기로 인해 행사에 불참했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한 위원장과의 불화로 인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당 운영 방식을 놓고 문제의식을 참모들에게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경률 비대위원을 공개 지지했다는 점을 들어 법조인 출신으로서 위험한 행동이라 지목했다.
일각에서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간 충돌로도 묘사한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수직적 당정 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윤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나 한 위원장이 여당 지도부로서 당권을 거머쥐자마자 단숨에 유력 대선주자 자리를 꿰자면서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즉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 변화가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한 위원장 역시 '윤석열 아바타' 이미지를 벗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갈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 어떻게 수습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김 여사 논란을 놓고 여전히 당내에서도 이견이 분출하고 있다.
또 총선이 80여일 남은 상황이라 당장 선거를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불안감도 새어 나오고 있다. 선거 목전에 한목소리로 대응해도 총선 승리가 쉽지 않을 판에, 당정간 충돌 지도부 사퇴 등 극한의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현재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대통령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친윤계 인사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한 위원장의 사퇴 압박이 나오고 있어 쉽게 매듭짓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친윤계 인사인 신평 변호사는 한 위원장을 향해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여권의 강성 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했고, 급기야는 자신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강하게 걸기 시작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위원장을 압박하는 의원총회 개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공천권을 쥔 한 위원장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사퇴를 요구할 수 있는 의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친윤계의 '군불 때기'에도 현역 의원들 대부분은 공개 발언을 자중하며 '입조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민주당은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를 두고 “대통령의 불법 당무 개입”이라며 집중 공세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대통령이 총선 관련해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깊숙이 개입한 사례가 있었나”라며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상당히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