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플랫폼 기업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작년 우리나라에서 월 평균 350만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신규 회원에게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는 것이 비법이다. 구글의 유튜브와 아마존 등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해 오던 우리 플랫폼 기업으로서는 엎친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플랫폼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고속 성장하다가 엔데믹 전환 이후에는 채산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공정위는 지난해 말 돌연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이하 플랫폼법)' 추진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해 뒀다가 끼워팔기, 자사우대, 최혜대우, 멀티호밍 제한 등 4대 금지 행위를 하면 즉각 제재하고 기존 공정거래법과 달리 플랫폼 기업에게 금지 행위에 대한 정당한 사유를 증명할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의 취지는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로부터 소비자와 중소 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 의도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플랫폼법으로 인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서비스가 전면 중단될 경우, 소비자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 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소비자단체도 있다. 플랫폼을 통해 영업하는 수많은 중소 상공인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정해 규제하는 것이 변화무쌍한 플랫폼 시장에 적합한 정책인지도 의문이다. 플랫폼법은 투자금 회수 창구이자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돕는 스타트업 M&A를 가로막을 것이다. 성장하면 규제하는 시스템은 스타트업 희망의 싹을 잘라낼 우려가 있다. 업계에서 플랫폼법을 '전족(纏足)'이라 표현하며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을 통한 타율규제 대신 자율규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 정책 기조다. 더구나 공정위는 작년 1월 새로운 규제 신설 대신 공정거래법의 집행 효과를 제고하겠다며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 지침까지 만들었다. 자율규제라는 정책 기조를 믿고 플랫폼 업계는 작년 말 오픈마켓 자율분쟁조정협의회까지 출범시켰다. 플랫폼법은 이러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배치된다.
갑자기 정책 기조가 바뀐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대가는 클 수밖에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규제가 가능하지만 처분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사전 규제를 도입한다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의 무능을 실토한 행정편의주의로밖에 안 들린다. 처분 능력을 강화하면 될 일을 규율 자체를 바꾸겠다니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아닐 수 없다.
빅테크에 대한 대응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은 자국 기업 보호와 육성에 무게를 두는 반면 유럽은 미국의 빅테크에 맞설 현지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정위의 법안과 같은 사전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선택한 '유럽식 사전 규제'는 오히려 국내에서 네이버·카카오와 견줄 만한 '넥스트 네카오'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글로벌 빅테크 쏠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플랫폼 세계에는 국경이 없다. 카카오, 네이버를 비롯한 7개 IT기업은 국내에서는 지배적 사업자일지 모르나 합산 매출이 구글, 아마존 등 미국 5대 빅테크의 3%도 안 된다. 우리나라 디지털 경제에서는 K팝을 등에 업고 인터넷 쇼핑 등 다양한 플랫폼이 이제 막 개화하는 시점이다. 이때 플랫폼법이 자칫 혁신의 발목을 잡기라도 한다면 디지털 세계의 후진국인 유럽과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지도 모른다. 어렵게 마련된 국내의 디지털 생태계가 플랫폼법의 무리한 추진으로 자칫 와해될 우려가 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전원 교수(전 한국민사법학회장) servius@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