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가는 무전공 신입생 선발문제를 두고 말이 무성하다. 학과나 전공 간의 벽을 허물어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 전에 미리 다양한 전공을 경험하게 하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이나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히 자신의 적성이나 특성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 학교와 전공, 학과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제도임은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까지 가는 외국의 학생과 비교하면, 자신의 적성이나 재능도 모른 채 성적에 맞춰 갑자기 전공을 선택한 우리나라 학생이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내가 좋아해서, 내 적성에 맞아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 선택한 전공에 나를 꿰어 맞추는 방식이 지금 우리나라의 입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에게 1년간 여러 전공을 경험할 기회를 주고 이후 자신의 적성이나 특성에 맞는 전공이나 학과를 선택하도록 그 기회를 주자는 건 매우 적절한 시도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취지 자체만 놓고보면, 제도 도입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취지에도, 대학가에서 선뜻 두 손 들어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해온 학생이야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적성에 맞는 전공을 잘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단지 입시용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에만 전념해온 학생이 1년 기회를 준다고 자신의 적성을 찾고 그 적성에 맞춰 전공을 선택할 수 있을까. 4학년 졸업반 학생과 면담할 때 가장 크게 벽에 부딪히는 문제가,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분야에 장점을 갖고 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겠다고 답변할 때다. 그러다 보니 매달리는 게 유행하는 자격증, 소위 말하는 취업 대비용 스펙 끌어올리기뿐이다. 비전공이나 비교과의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1학년 신입생이 1년 동안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을 수 있을까. 상당히 회의적이다. 자신의 적성이나 특성을 여전히 잘 모르는 상황에서 1년이 지나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학생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선택은 당장의 인기있는 학과나 전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적성, 해당 전공의 전망 등과 무관하게 수도권 대학으로 학생이 몰리는 이유와 똑같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기초학문의 부실, 더 나아가 중단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원천기술 혹은 기초기술의 부족이다. 원천기술이나 기초기술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집중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얻을 수 있다. 대신 한 번 만들어진 원천기술이나 기초기술은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경제에 큰 기여를 한다. 당장 인기가 없더라도, 학생이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기초학문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무전공 선발 제도는 이러한 체계를 무너뜨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정말로 학생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도록 하고자 한다면,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분야로 대학까지 진학하고 대학원까지 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치원 때부터 유전학이 좋아 스스로 콩을 키우며 멘델의 법칙을 직접 확인했던 학생이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그 모든 자료를 버리고 대학 입시용 공부에만 매달려 하는 현실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무전공 선발 제도 자체를 도입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대학은 자의든 타의든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무전공 선발의 취지를 정말로 살리려 한다면, 무전공 선발제도 도입에 그쳐서는 안 되고, 대학 입시 때문에 자신의 모든 적성과 좋아하는 공부를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문제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윤식 경상국립대 교수 yunshik@gnu.ac.kr
경상국립대 교수 김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