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모든 산업이 AI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4' 메인 키워드도 AI였다. 현장에서는 가전, 모빌리티, 교육 등 여러 분야 기업들이 AI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을 앞다퉈 선보였다.
바이오 헬스케어 시장 역시 AI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도 의료 영상 판독 및 진단, 진료 지원, 환자 모니터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확보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치료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의료AI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한 우리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병원, 대학, 기업들과 함께 AI 정밀 의료 솔루션 '닥터앤서'를 개발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진행한 닥터앤서 1.0 사업에서는 8개 질환과 관련된 전립선암 발병·재발 예측 AI 솔루션, 대장내시경 소프트웨어 등 21개 소프트웨어(SW)를 개발했다. 현재 닥터앤서 2.0 사업이 2024년까지 280억원 규모로 추진 중이다.
의료AI의 높은 성장 가능성과 사업성에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고, 시장에 진입한 기업들의 활약 덕분에 성과가 무르익어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의료AI는 부정확한 진단과 치료로 환자의 건강한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의료비 증가, 낮은 신뢰성 등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위험하다. AI의료 기기 시조라고 불리는 IBM '왓슨'도 연구단계에서 제품이 판매된 후 잘못된 치료법을 추천해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당시 폐암의 경우 정확도가 18%, 위암과 유방암의 정확도도 40%대에 불과해 의료진 및 산업 관계자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IBM은 결국 왓슨의 암 치료 프로젝트와 신약개발을 위한 AI 플랫폼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의료AI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하고, 의료 정보를 더욱 효율적으로 전달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유용한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변화들이 한데 모여 의료 질과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견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신뢰성, 안정성, 훈련 데이터 편향성, 윤리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국내 의료AI 산업이 성숙한 시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만큼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의료 AI 기업 육성을 고민해야 한다. 시장 진입 전 체계적인 모델 검증과 투명성 확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수반돼야 한다. 보안성이 입증된 의료 데이터 솔루션 구축과 데이터 표준을 맞추는 작업도 필요하다. 의료AI가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만큼 편향되지 않은 양질의 데이터를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관리 분석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하고, 표준 기준을 통해 조직 및 기업간 데이터를 공유하지 못하는 데이터 사일로 현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복지부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9월 보건의료데이터의 상호 운용성 확보를 위해 핵심 데이터 항목, 용어, 전송 규격을 지정해 발표한 바 있다. 최근 복지부 주관하에 혁신적인 의료 AI 솔루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상호 운용성 검증을 마쳤다.
의료분야 신기술 설계 단계에서 임상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개발 과정 참여까지 이어지는 것은 의료현장에서 사용되는 유효한 서비스를 완성하는 지름길이다. 필자는 닥터앤서2.0 사업 고혈압 분야에서 '환자의 차기 혈압 예측SW', '고혈압 관련 합병증 발생 예측 SW' 프로젝트에 부천성모병원, 한양대병원, 라이프시맨틱스와 함께 참여해 사용자 의견을 개발 과정 초기에서부터 반영하고 성능을 검증한 바 있다. 임상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임상 데이터, 검사 데이터 기반 진단 및 치료 보조 소프트웨어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사용될 수 있도록 인허가 이후 실증 단계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써 그 결과를 전파해 나갈 예정이다. 닥터앤서 2.0 사업을 통해 임상의의 정확도 높은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환자와 의료진에게 직접적인 효용이 제공되는 의료AI개발 발판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향후 몇 년간 세계 의료AI 시장에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솔루션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도 늦지 않게 우수한 의료AI 서비스를 가려내고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의료 데이터 활용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국책사업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냈던 의료 AI 솔루션을 비롯해 실증 사업을 통해 검증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집중 지원까지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글로벌 의료AI를 선도할 게임체인저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주한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순환기내과 교수 kim@zuhan.com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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