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 고유종인데도 외국으로 반출돼 상품화되고 우리나라에 어떠한 권리도 없던 사례가 종종 있었다. 구상나무는 1917년 미국의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제주도에서 반출해 아비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라는 학명을 짓고 신종으로 발표했던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이후 구상나무는 유럽에서 종자개량을 거쳐 크리스마스트리로 보급되었다. 미국에서 정원수로 인기가 많은 미스킴라일락도 1947년 미군정청 소속 엘윈 미더가 북한산에서 채집한 털개회나무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원예종으로 개량했던 식물이다. 생물자원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사례를 방지하고자 국제사회는 2010년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생물자원으로 얻어지는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구체적 규범을 정했다. '나고야 의정서'로 알려진 이 협약은 생물자원에 관한 소유권은 해당 국가에 있고, 해당국 동의 없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8월 98번째 당사국이 되면서 유전자원의 접근·이용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이후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 확립은 신산업이 됐다. 바이오산업 세계 시장의 동향 보고서(Orion Market Research, 2021)에 따르면 생물자원을 소재로 활용하는 바이오산업 세계 시장 규모는 2021년 5837억달러에서 2027년 9113억달러로 연평균 7.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 매출액은 2011년 약 6조4000억원에서 2020년 약 17조5000억원으로 연평균 11.8% 증가하였으며 2025년에는 약 27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생물주권 확립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생물종목록을 정리하고 이를 국제 사회에 밝혀야 한다. 전 세계에는 약 3000만종의 생물이 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종목록(Catalogue of Life)에 약 210만종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약 10만종이 서식한다고 추정하는데 1996년 약 2만8000종을 시작으로 27년 만에 국가생물종목록 6만종을 구축했다. 실질적인 조사는 2007년에 개관한 환경부 소속 국립생물자원관의 자생생물 조사 발굴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약 16년 만에 2배가 넘는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환경부뿐만 아니라 학계 등 여러 기관에서 총 6000여명이 함께 참여해 이룬 결실이기에 의미가 더 크다.
또, 국립생물자원관은 그동안 축적된 연구 전문성을 활용해 생물자원 부국임에도 자국의 종목록 정보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고 있다. 2007년부터 국립생물자원관을 통해 표본 11만7000점, 해외 생물다양성 도감 41종을 제작해 기증했으며 공무원 총 143명을 우리나라에 초청해 전문 인력양성 교육을 진행했다. 캄보디아, 마이크로네시아 등 5개국에 표본실을 설치하였으며, 현재 베트남, 조지아, 에콰도르 등 11개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국가생물종목록은 산업계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운영 중인 국가야생생물소재은행은 26만점의 생물 소재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현재까지 특허 253건을 출원했다. 특히 수입효모를 대체할 수 있는 주류 발효용 자생효모 등 81건의 기술은 45개 기업에 이전했다. 또 매년 갱신한 생물종목록을 바탕으로 종별 특성 및 유용성, 관련 특허 등 다양한 정보를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시스템'을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기업이 관련 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합동설명회, 기술 상담 등도 수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해외 생물소재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생물주권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추정 생물종의 3분의 2가량을 밝힘으로써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생물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마련됐다고는 하나 추정치의 3분의 1 이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앞으로도 아직 조사되지 않은 나머지 국내 자생생물을 찾아 국가 생물종목록을 지속 확대해가는 한편, 국내 바이오산업 활성화를 위한 생물자원 활용 기술개발 및 사업화 지원도 강화할 예정이다.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
〈필자〉 1962년생으로 1981년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 입학,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모두 취득했다. 1995년에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환경연구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국립환경과학원 자연연구과장 및 연구전략기획과장, 국립생태원법인화추진단장,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장 등 생물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치고 2021년 12월 제 8대 환경부국립생물자원관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