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는 지난해 '인공지능(AI) 교육 기반의 창의 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됐다. 의료바이오, 인문·사회, AI 3대 융합 클러스터 중심 체제로 대학 운영 구조를 전면 개편한다. 이와 함께 AI 기반으로 학생들의 능동적인 학습과 초개별화된 학습경험을 제공해 맞춤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큰 틀을 만들었다.
지난달 31일 학교에서 만난 최양희 한림대 총장은 글로컬대학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안했다고 털어놨다. 이유는 간단했다. 2021년 9월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추진한 한림대의 새로운 혁신안과 글로컬대학 추진 방향이 같은 곳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최 총장에게 글로컬대학 사업 준비 과정, 대학 혁신, 미래 인재상 등에 관해 물었다. 최 총장은 그동안 다양한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확고한 교육 철학을 들려줬다. 그는 “글로컬대학 사업은 한림대가 글로벌 대학으로 성장하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최 총장과의 일문일답.
▲글로컬대학 가운데 한림대만의 강점과 차별점은.
-작년 1차년도 글로컬대학 예선에 통과한 15개 대학의 제안서가 공개됐다. 제안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한림대 제안서만 달랐다. 한림대는 대학 생존을 위한 혁신을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 대학은 지난 2년간 신입생 충원율 100%, 재정자립도 흑자, 졸업생 취업률 상승 등 좋은 지표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글로컬대학 사업에 지원하면서 한림대는 생존이 아닌,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대학으로 멋있는 혁신을 하겠다는 기본 철학을 가지고 준비했다. 글로컬대학을 도전한 많은 대학이 대학 내부 문제를 해결하거나 지역 사회 문제를 완화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대학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할지, 지역의 리더를 어떻게 양성해 낼 것인지에 관한 방안이 없었다. 한림대는 대학의 근본적 혁신안을 제시하고 싶었다.
▲글로컬대학의 과제인 벽 허물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한림대는 대학 내 전체 전공에 대한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혁신을 준비했다. 대학 내 전공 분야별로 나눠져 있는 큰 덩어리의 포장지를 벗겨 기본 요소를 모두 펼쳐놨다. 각 전공의 커리큘럼, 졸업 요건, 여러 평가 기준 등이 보였다. 이후 펼쳐 놓은 것들을 다시 조합해 미래에 적응할 수 있는 학생을 기를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사실 기업은 조직도 개편 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해체와 재조립 과정을 매번 진행한다. 그러나 대학은 상아탑 해체를 터부시하고 기득권의 반발이 크다. 한림대는 매년 학사 구조와 교육과정을 해체와 재조립하면서 한림대만의 장점을 극대화 할 것이다. 도헌학술원, 융합연구원 등을 통해 학과 별 벽을 허물고 새로운 전공을 신설해 융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한림대가 새로운 K-유니버시티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로컬대학이 내부를 통합하는 데 많은 힘을 써온 것으로 안다. 한림대는 어땠나.
-갈등은 학내, 혹은 지역사회가 글로컬대학 사업을 위한 혁신을 반대하거나 세력 간 불균형 등이 있을 때 발생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한림대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글로컬대학을 준비했다.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집단 지성을 발휘하고 수평적 거버넌스를 마련하면서 준비해 갈등 요소가 없었다. 2013년 삼성 미래기술육성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국내 여러 대학의 현실, 문제점 등을 파악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한림대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발전 방향을 향해 가야 할지 준비가 돼 있었다.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원인이 무엇인가.
-앞으로 지금과 같은 모델로 대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현재 대학의 위기 중 하나는 대학 교육을 대신할 다양한 대안이 생겼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대학 같은 온라인 대학과 무크 등 여러 교육 기관이 생겼고 기업체도 전공 불문하고 인력을 뽑아 재교육 통한 배치를 한다. 대학이 과거 틀에 머물러 있으면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어렵다. 최상위권 대학도 과거에 안주해 칸막이 세우고 과거와 똑같은 강의를 하면 안 된다. 대학도 변화해야 한다. 대학을 대체할 대안이 등장하는데, 대학이 스스로 서지 못하면 안 된다. 대학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많은 대학이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세계적 대학 교육을 위한 혁신을 해야 한다.
▲한국 입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초등학교까지는 특성화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 평준화, 공정한 교육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모든 교육과 입시제도는 성적순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은 성적순으로 대학에 가기 때문에 수직 이동만 가능할 뿐, 수평 이동이 금지된 사회다. 교육에서 다양성, 소통 등의 가치가 공정성이라는 기준에 막혀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버드, 예일대 등 외국 대학의 경우,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기보다 다양한 학생을 구성원으로 뽑아 어떻게 조화롭게 양성할지 고민한다.
▲대학의 무전공 입학 확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최상위권 대학보다는 중위권 대학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무전공 입학 확대가 학생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대학 입시를 연장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힘들게 대학 입시를 치렀는데, 무전공 입학으로 다시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주눅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무전공으로 입학해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하지 못할 경우도 학생의 입장에서는 문제다. 대학도 학생의 진학 관리, 정서 관리 등 역할을 맡은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무전공 입학이 도입 취지대로 잘 운영되기 위해 불안정한 요소를 고려해 정교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AI 시대에 학생들은 어떤 역량이 필요하나.
-AI 시대에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라는 말이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제는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대신 주변의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토론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기계와 협업을 잘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앞으로는 인간과 기계의 공존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이 챗지피티를 학업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무조건 금지하는 것보다는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챗지피티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활용한 교육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한다면.
-AI 발달로 인간이 직업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긍정적 세상이 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어떤 법제도, 규제, 예산 등을 만드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진다. 적극적 자세로 미래 설계에 동참해야 한다.
▲글로컬대학을 시작하는 각오는.
-글로컬대학을 단발성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대학이 미래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글로컬 대학은 새로운 대학의 모델을 정립하고, 발전시켜 미래 중심으로 역동성을 일으키는 허브가 돼야 한다. 정부가 만들어 준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해 미래를 이끄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최양희 한림대 총장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자공학 석사, ENST 프랑스국립정보통신대학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역임했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초대 이사장 등을 맡았다. 2021년 9월부터 한림대 총장을 맡고 있다.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