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내내 국내 소프트웨어(SW) 산업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SW 산업 현실을 논할 때는 착잡함과 아쉬움이 드러났지만 향후 방향성과 목표를 밝힐 때는 단호함과 결의가 느껴졌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회장은 SW가 국내 경제를 이끄는 주력 산업이 될 것이며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지난해 말 출범한 '글로벌 디지털플랫폼정부(DPG) 얼라이언스' 초대 의장을 맡았다.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는 민간과 범정부부처가 협력해서 DPG 모델 수출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민간 주도로 SW 성과를 최대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조 회장은 국내 SW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을 확보해서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지금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켓플레이스나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등 플랫폼을 통해 SW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쉽게 판매할 수 있는 길까지 열렸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공공 SW 사업에서 실질 예산을 확보해 SW 기업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도와야한다고 밝혔다. 예산 없는 계획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 회장은 이를 통해 SW 품질을 높이고 '제2 행정망 셧다운'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을 만나 국내 SW 산업이 나아가야할 길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안호천 AI데이터부장
-지난해 KOSA가 낸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킨 것이다.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에는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등 해외 진출 지원 부처는 물론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글로벌디지털혁신네트워크(GDIN),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 관련 기관이 전부 참여한다.
또 민간 최초로 초거대AI추진협의회를 발족했다. 세계적인 초거대AI 물결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협의회는 국내 인공지능(AI) 빅테크인 네이버클라우드와 LG AI연구원이 회장사를 맡았고, 13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는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는 쉽게 얘기해서 해외에 디지털플랫폼정부(DPG) 모델을 수출하는데 민관이 공동 대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출에 나설 국내 업체를 NIA 등 관련 기관에 전부 등록시키도록 할 것이다. KOSA에는 국내 대부분 SW 기업이 가입돼 있기 때문에 얼라이언스로 통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이전에는 DPG 모델을 수출할 때 각 부처가 각 나라를 따로 방문했다. DPG 수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모든 부처, 기관을 아울러야한다. NIA가 DPG 모델을 수출하는 금액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조 단위가 넘는다.
만약에 우리 정부가 개발도상국 등에 DPG 모델 등을 공적개발원조(ODA) 할 때, 경쟁력 있는 우리 기업과 함께 참여하면 더욱 좋지 않겠나. 국내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당 나라에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는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를 통해) 우리 기업이 정부와 함께 동반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국내 SW 업계의 해외 진출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국내 SW 업계는 공공 SW 시장에 의존해왔다. 공공에 의존하는 기업은 양적, 질적 성장에 한계가 분명하다. SW가 우리나라 대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성공해야 한다. 공공 SW 사업 대가 현실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SW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이제는 게임도 PC가 아닌 모바일로 하는 시대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스토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SW도 마찬가지다. 국내 SW 기업이 해외 시장에 SW를 팔기 위해서는 AWS 마켓플레이스나 MS 애저 등 플랫폼에 올라타야 한다. 결국에는 SaaS화해 판매하지 않으면 안된다. SaaS로 판매하는 것이 이익률도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대표 ICT 기업 더존비즈온이다. 더존비즈온은 플랫폼 부분 사업 이익률이 전체 사업 부문 가운데 가장 높다.
우리 SW 기업은 앞으로 SaaS를 기반으로 해외에 적극 나가야 한다. SaaS를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옛날에는 SW를 수출할 때 각 나라별로 버전을 만들어야 했다. 기존 레거시 시스템이랑 연계해야돼,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AWS, MS 플랫폼에 올리면 세계에 배포된다.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 비용으로, 크게 버는 구조다.
-각 기업이 SaaS화 하려면.
▲공공 SW 사업을 통해 레퍼런스를 확보하고 자본을 축적한 기업이 SaaS 사업에 참여하도록, 생태계가 클라우드·SaaS 중심으로 개편돼야한다. 기존 시스템통합(SI) 중심 생태계는 노동집약적·수직적 구조였다. SaaS 기반 생태계는 기술·지식집약적·수평적 구조로 빠른 기간 안에 SaaS 전환이 가능하다.
-비용 문제를 이유로 SaaS화가 쉽지 않다는 기업도 많다. KOSA는 어떻게 대처해왔나.
▲기존 온프레미스(구축형) 기반 SW 기업은 SaaS로 전환할 때 비용이 든다. 중소·중견기업 단위에서 자체 투자하기 어려운 규모다.
이런 딜레마를 가진 기업을 위해 KOSA는 정부와 빅테크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부에 펀드 조성을 강하게 건의했다. 다행히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200억원 규모 모태펀드 조성을 계획했다. 이른 바 'SaaS 혁신' 펀드다. 본예산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부터 운영될 것으로 기대된다.
요즘 젊은 세대가 창업하는 SW 기업은 전부 SaaS가 주력이다. SaaS 전환이 쉽지 않다면, 인수합병(M&A)를 활성화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KOSA는 국내 SW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도록 어떻게 돕고 있나.
▲국내 SW 생태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을 목표로 사업 구조를 다변화, 고도화해야 한다. 계속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에 KOSA는 기존 글로벌실을 글로벌사업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SW 해외 수출과 투자 유치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 집중한다. 6개 나라를 추가 지원할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두바이다. NIPA도 두바이에 새 오피스를 마련한다. 요즘에는 호주와 미국 실리콘밸리가 주목받는다. 이런 지역에서 SW 수출을 집중 지원할 생각이다.
기업들이 기존 좋은 SW를 SaaS 전환하는데 망설이고 있다. 이유 등을 수렴해서 올해 상반기 중 KOSA 산하 SaaS추진협의회를 통해 정부 측에 해결 방안 등도 제시할 예정이다.
-생성형 AI 발전으로 SW 업계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현재 상황을 진단하자면.
▲지난 2023년은 AI 디지털 시대를 맞는 변곡점이 된 해였다. 생성형·초거대AI가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고, 국내 기업도 활발히 성과를 내놨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보유했다. 현지에 최적화된 언어를 바탕으로 버티컬(특화) 전략으로 글로벌 LLM에 대항할 경쟁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AI 기반 응용서비스 부문의 경우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은 벌써부터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초거대AI 응용 서비스도 SaaS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SaaS는 SW고, 응용 서비스는 플랫폼'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양자는 실제로는 같다. 앞으로는 초거대AI 응용 서비스가 창업과 고용을 확대할 것이다. 초거대AI 응용 서비스를 SaaS로 전환해 기업을 육성·양성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SW 산업이 왜 중요한가.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높다. 생산성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고부가가치 융합 산업으로 전환해야한다. SW 산업이 이같은 전환을 이끌 수 있다.
지난해 챗GPT로 생성형 AI 시장을 확장시킨 오픈AI의 기업가치는 1년 만에 290억달러(약 39조원)에서 1000억달러(약 134조원)까지 뛰었다.
올해 초 폐막한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4'에서도 AI가 화두였다. 글로벌 기업은 기기 자체에 AI를 장착한 '온디바이스 AI 시대'를 예고했다.
SW 기술은 이렇듯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존 산업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행정망 장애에 대한 정부 대책을 평가한다면.
▲정부 대책을 보니까 700억원 규모 이상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 참여를 허용했더라. 현재 공공 SW 사업에서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을 보면, 대기업이 참여한 것들이다. 정부는 막연히 대기업이니까 더욱 높은 책임감을 갖고 공공 SW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접근은 안된다.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 규모 기준이 왜 700억원 이상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공공 SW 사업 품질을 높이기 근본 방안은 결국 예산이다.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으면 뭐하나.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개선이 되겠는가.
이번 정부 대책은 실질적인 예산 반영 계획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정부는 제2 행정망 셧다운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정된 예산을 증액하거나 수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최대 예산을 코로나19 팬데믹 때 투입했다. 행정망이 셧다운되면, 피해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보다 이상일 수 있다. 정부 대책이 실현 가능하도록 예산 편성을 바꾸지 않으면 행정망 장애는 계속 될 것이다.
-KOSA 회장으로서 향후 계획은
▲지난해에만 정부가 주최한 회의에 100번 넘게 갔더라. 3일 건너 한 번 꼴이다. 제18대 이어 제19대 KOSA 회장을 맡으면서 SW 산업 진흥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언제까지 회장을 맡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어진 기간 동안 SW 산업이 국가 메인 산업이 되는데 일조하겠다.
SW는 모든 산업 토대가 되는 기간 산업이다. 국가 성장동력 산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국민 기억에 남는 협회장으로 남고 싶다.
◇조준희 회장은.
조준희 회장은 유라클을 창업한 SW 기업가다. 지난 2021년부터 KOSA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글로벌 DPG 얼라이언스 의장,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 산업생태계 분과위원장,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고 있다. 최전단에서 SW 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이끌고 있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