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여러 우려가 나온다. 초기 시장을 넘어 성숙 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케즘' 구간에 진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전기차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요 수단인 만큼 현재 수요가 둔화했더라도 이를 극복하는 기술 개발이 진행된다면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이차전지다. 최근 이차전지 시장에서 중국 기업이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도전이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사용하고, 여러 여건상 우리나라 기업이 유사 제품을 중국 기업보다 싸게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기업은 더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고품질 제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즉, 기술 개발만이 K배터리의 기술 우위, 시장 우위를 점하게 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더 값싼 원료를 사용하는 제품을 만들어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이 필수다.
이차전지에서는 양극, 음극, 전해질, 분리막의 4대 핵심소재가 매우 중요하다. 4대 핵심소재가 이차전지의 기본 특성을 대부분 결정한다고 봐도 된다. 이차전지의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납축전지는 전극이 납이기 때문에, 니켈카드뮴(NiCd) 전지는 전극 소재로 니켈화합물과 카드뮴이 사용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핵심소재의 종류나 특징이 이차전지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핵심소재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이차전지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중요 요소가 된다.
소재 연구개발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소재의 특성을 바꿔가면서 셀에 적용하고 관련 공정 기술까지 개발해야 한다. 최초 리튬코발트산화물(LiCoO2)이 채택되고, 10년 이상 시간이 흐른 후 현재 주로 쓰이는 삼원계 양극재인 NCM(LiNixCoyMnzO2) 관련 연구가 시작됐다. 이것이 양극 소재로 채택돼 니켈 함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현재까지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이 반도체 무어의 법칙과 비교하면 매우 더디게 느껴질 수 있다. 이차전지 소재는 용량뿐만 아니라 수명, 출력, 안전성 등 다양한 요소를 같이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들 특성은 대부분 트레이드오프(상충) 관계에 있다. 즉, 한가지 특성을 향상시키면 다른 특성이 나빠진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리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이차전지 핵심 소재에 대한 연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산·학·연이 협력하고 정부에서 적절히 지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 연구는 차세대 이차전지로도 이어진다. 이차전지의 응용처가 다양해지고 각각의 응용처가 서로 다른 스펙을 요구하는 현실에서 모든 영역에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각 응용처 맞춤형 이차전지 필요하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 현재 다양하게 개발되는 차세대 이차전지다. 차세대 이차전지 개발의 시작은 다시 핵심소재 연구개발로 귀결된다. 핵심소재가 이차전지의 기본 특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산·학·연·관이 힘을 합쳐 중장기 연구개발이 필요한 부분이다.
잠시 전기차 시장이 둔화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할 것이다. 현재의 케즘존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기술 개발, 새롭게 열리는 다양한 응용처에 부응할 수 있는 차세대 이차전지 개발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산업에서 초격차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 kychung@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