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라는 산업의 시작은 한국이다. 현재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네이버, 카카오라는 점을 생각하면 웹툰을 국가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웹툰 산업정책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플랫폼 육성 정책과 제작자 육성정책이 서로 모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웹툰 시장은 실제 웹툰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제작자와 네이버, 카카오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으로 구성된다. 현재의 모습은 영화산업에서 제작사와 극장·배급사 구조와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작투자 펀드나 배급·유통 펀드가 없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웹툰 산업에서 투자자의 역할을 하는 주체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네이버와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에서 상단을 차지하는 콘텐츠들 중 많은 부분이 플랫폼의 투자를 받은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마치 극장과 배급사를 가진 CJ와 롯데가 영화 제작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과 같다.
플랫폼이 제작 투자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산 플랫폼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웹툰계의 넷플릭스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콘텐츠를 아마존과 애플에서도 볼 수 있다면 네이버와 카카오의 글로벌 경쟁력은 하락한다. 국내 웹툰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생산기지인 한국의 제작 생태계를 독점하는 현재의 구조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수많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플랫폼의 투자가 개방적이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품질을 보장하면서 안정적인 콘텐츠 공급이 필요하기에 플랫폼도 일종의 파트너 체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의 파트너가 되면 투자의 기회와 더불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제작자는 소수로 한정되기에 한국 웹툰 제작 생태계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친다. 자금력의 문제로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야하는, 어쩔 수 없이 '유행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해 국내에 우선적으로 유통해야하는 투자금에 발 묶인 상태가 국내 제작자의 현 주소다.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 웹툰에 관심을 갖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마존, 애플, 디즈니 등이다. 그런데 이 시장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 제작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제작을 위한 투자다. 웹툰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편당 1~2억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하지만 투자 수익이 회수되는 기간은 훨씬 길고 느리다. 아마존과 애플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싶어도 자금력이 부족해 제작이 불가능한 제작사가 많다.
웹툰이라는 콘텐츠는 포맷을 보면 글로벌 하지만 제작 환경은 글로벌 하지 않다. 아직은 그 어느 국가도 웹툰이라는 새로운 콘텐츠 포맷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기에 아마존과 애플도 웹툰이라는 시장에 진입하면서 한국을 제작기지로 생각하고 있고 실제 한국 제작사를 통해 웹툰을 소싱하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 특히 이미 수십억 명의 고객을 가진 글로벌 플랫폼들이 웹툰이라는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분명 제작자에게는 기회이고 국내 플랫폼에는 위협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글로벌 웹툰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수많은 웹툰 제작사의 작품이 웹툰이라는 산업의 주류가 돼 전세계 고객을 만날 수 있다면 이는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일 것이다.
한국이 플랫폼과 제작 생태계를 모두 가진 산업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모순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게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부 정책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이승훈 가천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iloveroc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