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석탄의 열에너지를 기계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혁신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시작된 산업화는 유럽·미국으로 퍼져 나가 1차 산업혁명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초강대국으로 글로벌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일본은 1860년 정치적 혁신 이후 본격적으로 영국과 유럽, 미국으로부터 석탄 기반 산업화 기술을 전수 도입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게 된다. 이 시기 조선에서도 지각 있는 실학자들이 석탄을 주 에너지원으로 도입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다는 상소문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석탄을 기반으로 일본이 급격한 산업화를 이뤄 조선보다 한 차원 높은 공업생산력을 확보해, 조선은 일본에 정치·경제적 종속으로 치닫게 돼 불행한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역사의 중심에 석탄이 있었다.
이후 석탄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기술로 2차 산업혁명이 촉발됐으며, 전기의 다양하고 정밀한 제어 기술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이루는 3차 산업혁명이 발생했다. 이 시기까지 에너지원은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가 중심이었다.
이제, 인공지능(AI) 기술에 의한 모든 사물의 지능화로 초연결성을 이루는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있다. 이 단계는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지속 가능한 탈탄소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연료가 거의 무한하고, 대용량 전기생산이 가능하며, 탄소 배출이 없는 핵융합에너지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궁극적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루려면 핵융합에너지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핵융합에너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1차 산업혁명 주인공이었던 영국은 현재 세계 최초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목표로 2040년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완료하려는 STEP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40년대까지 핵융합발전소(FPP) 건설 기반 마련을 위해 공공·민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핵융합실증로 격인 CFETR 장치 공학 설계를 이미 마쳤으며,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핵융합종합연구시설(CRAFT)도 문을 열었다.
일본은 핵융합 스타트업 육성과 민간기업과 협력 강화를 위한 핵융합산업위원회의 출범 등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에 핵융합실증로 개념(안)을 확정하고, 설계TF 운영을 시작했으며, 2026년까지 예비 개념설계를 완료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주요 선진국들은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위한 독자적 전략과 함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사업에 참여하며 양자 또는 다자간 공동연구 수행 등 경쟁과 협력 균형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핵융합에너지 개발 가속화를 위한 각국 전략이 하루가 다르게 발표되며, 본격적인 경쟁 시대가 예견되기 때문이다.
현재 역사는 지난 19세기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룰 기술패권을 다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한국의 인공태양 KSTAR 건설과 운영, ITER 프로젝트 참여로 어렵게 핵융합 선도국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핵융합에너지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결단과 투자가 필요하다. 과거 석탄과 달리 핵융합에너지는 기술 중심 에너지이므로, 한 번 기술 격차가 벌어지면 그 간극을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핵융합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는 결국 기술을 가진 나라의 에너지 종속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이 석탄과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혁신을 통해 19세기 정치·경제패권을 잡았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석탄 대신에 핵융합에너지를 가진 나라가 그 패권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이기를 바라본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 sjyoo@kfe.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