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과학 문화는 어떻게 시민들을 끌어당길 것인가

지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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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일까? 인간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눠 설명하는 MBTI(성격유형검사) 열풍이 몇 년째 가시질 않는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색상을 찾아주는 퍼스널 컬러, 내 유전 특성을 해석하는 유전자 검사,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이 자세히 작성해 주신 생활기록부 조회까지. 나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사회 전체에 문화로 녹아들고 있다. 이런 문화가 과학 축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2023년 11월, 일본 대표 과학 축제인 '사이언스 아고라'에 다녀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안내 부스는 놀랍게도 운세 부스였다.

과학에 웬 운세? 유사과학축제가 아니냐고 비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사로잡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이 운세 부스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통을 흔들어서 그 안의 여러 나무 막대 중 하나를 뽑는 방식으로 운을 점친다. 선택된 나무 막대에는 오늘의 운세와 함께 나와 잘 맞는 부스가 몇 번 부스인지 쓰여 있다. 운세를 좋아하는 일본인의 문화를 반영한 기획이다.

축제 안내 책자에도 재미난 장치가 있다. 마치 MBTI처럼 나와 맞는 과학 분야를 알아보는 테스트인데, 묻는 말에 “예·아니요”로 대답하면 그에 맞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 내 유형이 나오는 형태다.

내게 맞는 분야가 결정되면 그 분야와 관련된 부스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자세히 안내한다.

운세 부스와 안내 책자의 간단한 테스트 이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축제의 중심이 과학에서 '나'로 옮겨졌다. 중심이 나로 바뀌자 축제를 대하는 마음도 조금 더 흥미로워졌다.

질량이 무거운 천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천체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축제의 중심이 과학에서 나로 바뀌면서 나를 중심으로 온 과학이 중력에 사로잡힌 느낌이 들었다. 3세대 과학 전시라 불리는 개인 맞춤형 전시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축제 현장을 본격적으로 둘러보면서 눈에 들어온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사람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참가자도, 부스 운영자도, 전체적으로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사람이 골고루 축제장을 채웠다.

특히 노인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우리나라 과학축제에서는 어린이가 오면 본인 차례를 양보하거나 체험하려고 줄을 선 것 자체가 부끄러워 축제장을 떠나는 어른을 많이 봐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참가자였다. 꼬마 과학 영재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는 게 참 놀라웠다.

맞다. 과학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초청 강연자의 성비도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여성 5명에 남성 5명으로 반반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 참가자도 많았다. 이 행사를 주관한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축제 장소를 선정할 때는 반드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참가자가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축제의 사소한 디테일에서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언제나, 태도는 결과로 나타나는 법이다.

국가의 연구개발(R&D) 성과를 강조하지 않는 점도 신기했다. 국가 기관이 축제에 참가하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축제와 같았지만 성과 대신 그들이 다루는 과학의 기본 원리를 전시하고 설명했다.

기념품도, 뽑기 이벤트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구독 이벤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는 과학만을 마주하고 과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없듯, 평소 잘 알지도 못하던 국가 기관의 알아듣기 힘든 성과 자랑보다는 재밌는 과학 이야기가 국가 R&D에 더 관심을 가지게 만들지 않을까?

올해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과학 축제가 열린다. 우리는 무엇으로 시민을 끌어당길 것인가? 세찬 바람인가, 따뜻한 햇살인가?

지구 과학커뮤니케이터 jiearth9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