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전 사실상 마지막 국회인 2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야 원내대표는 '사상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는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오로지 상대에게 칼을 겨누는 데 골몰했고, 진흙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양당 모두 '이젠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며 정치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정치계를 상징하는 유행어가 된 이 문구를 이제라도 새겨들은 것일까.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지원이 필수다. 늑장 대처로는 소용이 없다. 21대 국회는 여야 모두 '경제 살리기'를 줄기차게 외쳤으나, 경제를 지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아 왔다. 삼류도 아닌, 사류급의 후진 정치를 여실히 보여줬다.
29일 본회의를 끝으로 2월 임시국회가 막을 내린다. 사실상 4월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21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정부 질문에서조차 '입틀막(입 틀어막기) 사건',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쌍특검법 등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계속되는 정쟁에 민생·경제 분야 법안은 밀렸다.
21대 국회는 역대 최다인 2만 5000건이 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 비율은 이전 국회보다 훨씬 떨어졌다. 국회 파행이 일상화되면서 '방탄', '무능'으로 점철됐다. 법사위에 계류된 민생 법안만 438건에 이른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한 특별법을 비롯해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비대면 진료 제도화 관련 의료법 개정안,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 세제 개혁 관련 법안, 수출입은행법 등 절실한 사안들이 즐비하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의 불안 해소와 편익 증진,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에는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두고는 더 가관이다. 표를 노린 포퓰리즘 공약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심하다. 선거철 단골공약이자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도심 철도 지하화'가 또 등장했고, 표심을 노린 '창년·여성·실버 공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국민의힘이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방안을 제시하자마자 민주당은 추가로 '경로당 주 5일 무상점심'을 내걸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무상점심을 주 7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감세와 현금성 지원 공약이 난무한다. 재정확보 방안은 뒷전이다. 올해 정부의 역대급 '세수 펑크'가 우려되는데도 일단 내지르고 본다. 이러한 공약 남발은 결국 정치 불신을 더 키울 뿐이다.
21대 국회가 남은 임기 동안만이라도 염치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정쟁을 접고 시급한 민생 현안에 대해서는 '대승적 합의'를 이뤄주고, 실현가능성을 담보한 공약을 내놓기를 바란다.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반성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