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자의 사투리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정치가 국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이뤄지는 거라면, 설득과 대화를 통해 힘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그 방법부터 올바르게 학습해야 한다. 초보 정치인이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건, 익숙지 않은 정치 문법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 대다수가 모여 있는 여의도에는 그들만의 화법인 '여의도 문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주로 억지스럽게 지역 인연을 갖다 붙이거나 모든 걸 다해줄 수 있는 것처럼 확대해 얘기하는 과장된 대화 방식 등을 부정적 비유로 사용하는 듯하다.

그만큼 정치는 국민을 설득하고 또 신뢰까지 얻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모 정치인은 그들만의 익숙한 '여의도 사투리'가 아닌 5000만 국민의 말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말 그 자체를 얘기한 게 아니라 정치인 집단으로 대변되는 특이한 문화를 지적한 것이다. 여의도로 특징 지어지는 정치권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여의도 문법이 나왔고, 그 인식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해 더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게 여의도 사투리라는 얘기다.

기존 여의도 정치권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은 이 발언을 듣자니, 문득 여의도 사투리는 여의도 한 곳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과학기술 또한 국민 실생활과 동떨어진 곳에서 과학자 자신에게만 익숙한 눈높이와 문법으로 무장한 채 국민을 어렵게 설득하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과학문화 프로그램도 결국은 과학기술과 국민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과학자가 사용하는 용어, 혹은 과학자의 태도나 인식이 앞에서 언급한 여의도 문법, 여의도 사투리와 다를 바가 있을까. 어쩌면 과학자 사투리도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든다.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 기업에 이전하고, 그 기술이 실제 제품 개발로 이어져 국민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게 과학계의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서 우리 과학자들은 얼마나 올바른 말과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연구성과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적합한 소통과 신뢰성있는 태도의 부재 때문이다. 과학자가 말하는 어려운 용어와 표현, 그리고 기술이전을 놓고 대립하는 의견 차이 등이다.

연구성과를 대하는 과학자간 태도에도 아직 많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바로 그 거리감이 연구의 초기 목적을 잃게 만들고, 과학자와 기업, 그리고 국민 간의 대화를 불통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특별한 그들만의 문법이나 사투리가 자신만의 의견을 고수하려는 빈틈없는 고집으로 형성된 거라면, 그건 특정 개인과 조직, 집단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과 태도를 변화시키려면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과학자 마인드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문법도 사투리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상대방이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게 우선이니까 말이다.

과학자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꿈과 목표가 있고, 그만큼의 역할과 함께 책임도 가진다. 이 기회에 모든 과학자가 자신도 모르게 과학자의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ljh1239@kim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