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수많은 물음을 던지고 답하면서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운 점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던지는 것이 항상 최선의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물음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사고의 틀(frame)을 속박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틀 안에서 해답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틀을 넘어선 사고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문제 의식하에 “우리는 인공지능(AI)법을 제정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바람직한 답변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영국 자동차 산업 발전을 저해한 것으로 알려진 적기조례(The Red Flag Act)를 근거로 이를 반대하거나, AI가 보인 여러 비윤리적 사례를 근거로 이를 찬성하고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택일적으로 제시된 선택지에 답변하기 이전에 이러한 사고의 틀을 통해 문제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지부터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때의 'AI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대론자들은 이를 규제정책과, 찬성론자들은 이를 진흥정책과 동일시하지만, 얼마든지 정반대로 바라볼 수도 있다. 나아가 'AI'가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전혀 다른 대상을 가리킬 때도 많다. 이처럼 전제를 극히 일부만 달리해도 결론이 크게 뒤바뀔 수 있으므로,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대신 이를 적절한 수준에서 구체화한 뒤 본격적 논의에 돌입할 필요가 있다.
AI법 제정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다른 한 가지는 신중함 못지않게 신속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AI는 급변하는 기술이므로 그것의 법제화 과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구호가 되풀이된 지도 어느덧 5년이 넘게 흘렀다. 법제화를 통해 창출되는 사회적 수요 및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해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점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여러 외부 변수의 변화에도 신중론만을 고수할 경우, 법제화 등 AI 규범 수립을 통한 각국의 전략적 행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질 위험이 있다.
어느덧 우리는 수동적인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선도자형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하는 달라진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높아진 우리나라에 대한 국내·외적 기대를 충족할 수 있으려면, 경제 및 기술 분야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 분야 역시 선도적 역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올바르게 설계된 법제도가 사회윤리적 공감대하에서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기대되는 AI법 모델일 것이다.
요컨대 한국의 AI법 정책은 신중하되 신속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무수히 제시되는 전략의 홍수 속에서,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양자택일적 선택지가 간과한 전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동시에 선진국의 법제화를 변용하는 수동적 전략을 넘어 때로는 시장의 수요를 선도적으로 창출하는 과감한 행보를 펼칠 줄도 알아야 한다. 파괴적 혁신은 기술을 넘어 법제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 하는 미덕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박도현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조교수 gray@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