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만 전기비용이 30~35% 인상됐습니다. 정부 탄소중립 취지에 맞춰 설비를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갈아탄 상황이라 부담이 큽니다. 마음 같아선 수소 발전기라도 들여놓고 싶지만, 중소기업엔 쉽지 않습니다.”
원가대비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리 뿌리 중소기업(금형·주조·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례없는 전기요금 인상이 거듭된 이유다. 과거 화석연료에 의존하던 중소기업들이 정부 탄소중립 취지에 맞춰 전기 설비로 대거 전환했지만, 갑작스런 전기료 인상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납품대금연동제에 전기료 등 에너지 비용 연동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재료 가격 급등에 대한 중소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납품대금연동제'를 시행했다. 납품대금연동제는 '원재료' 가격이 일정 기준(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10% 이내에서 협의해 정한 비율) 이상 변동하는 경우 그 변동분에 연동해 납품대금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원재료'에 전기료는 배제됐다. 금형·주조·용접·표면처리·열처리기업의 경우 전기를 원재료로 사용한다. 일례로 열처리기업은 가열 과정에서 전기를 사용한다. 이들에게 전기비용은 사실상 원재료나 마찬가지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일반 제조업체들의 경우 전기료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지 않고, 인건비 등과 함께 비용처리해 배제됐다. 중소기업계는 금형·주조·용접·표면처리·열처리기업에 대해 납품대금연동제에 전기료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전기료 부담은 상당하다. 전기료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열처리기업이 26.3%, 주조기업이 14.7%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이들 기업 영업이익에서 전력비로 지출하는 비중도 43.9%로 타업종 대비 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중소제조업 에너지비용 부담 현황조사'를 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부담된다는 기업이 전체 94.9%나 된다. 업종도 플라스틱, 금융, 비금융, 기계, 금속, 식품 등 다양하다.
전기 이외 다른 수단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십수 년 전 정부 탄소중립 취지에 맞춰 화석연료에서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전환했다. 주물공장에서조차 요샌 화석연료를 쓰는 곳을 찾기 힘들다. 일부 기업이 천연가스 등을 사용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전기료 부담이 크다 보니 수소발전기 등으로 설비 전환을 검토했지만, 종사자 50인 미만인 중소기업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전기료가 납품대금연동제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납품대금 인상도 어려운 상황이다. 중기중앙회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 영향조사'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료는 2022년 27% 인상됐는데, 중소기업 83.8%가 인상된 전기 부담을 납품대금에 반영하지 못했다. 협상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여건상 예외사항으로 적용된 전기료를 기반으로 납품대금을 올려달라고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국내 뿌리산업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일부지만 수십년간 사업하면서 처음으로 적자를 봤다는 기업까지 나왔다. 납품대금연동제에 에너지 비용이 계속 반영이 되지 않으면 해외로 생산시설 이전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전기료 인상에 따라 금형·주조·용접·표면처리·열처리 등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기기도 했다.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과거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전기비용이 높아지면서 뿌리산업들이 대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사례가 있으며, 최악의 경우 국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소기업이 납품업체에 원재료 인상을 이유로 협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납품대금연동제를 통해 우리 뿌리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