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가 나타나도 스마트폰에서 검색하면 다 나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전자사전이 그 자리를 대신했었죠. 특히 ‘샤프(SHARP)’의 전자사전은 국내 전자사전 시장 점유율을 휩쓸 만큼 큰 인기를 자랑했어요.
샤프는 계속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샤프의 유명세는 2000년대 중반에 접어 들며 순식간에 하락했어요. 그후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샤프가 이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오는 중이라고 해요. 잠잠해 보였던 샤프의 근황을 함께 알아봅시다.
‘최초’ 타이틀만 여러 개였던 샤프
샤프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역사를 지닌 일본의 장수 기업입니다. 1912년 설립 당시 첫 사명은 창립자 하야카와 토쿠지 이름에서 가져온 ‘하야카와 전기’였죠. 그러나 설립 3년 만에 기계식 샤프펜슬이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 사명도 훗날 ‘샤프’로 변경됐어요.
샤프펜슬의 인기를 등에 업고 이후로도 샤프는 활발한 제품 개발과 출시를 이어갔습니다. IT 산업이 발전하기도 훨씬 이전부터 샤프는 일본 최초로 흑백 TV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어요. 세계 최초 회전판을 적용한 전자레인지도 출시했다고 하죠. 샤프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도 유명한 제품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로도 샤프는 승승장구해나갔는데요. 1970년대에는 컬러 액정 디스플레이를 개발했고, 1989년에는 세계 최초로 LCD 디스플레이 TV를 출시하면서 경쟁 기업들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데 성공했죠. 과거 브라운관 방식의 CRT TV를 버리고, 샤프는 본격적으로 LCD TV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보다 빨랐던 출발 그리고 추락
샤프는 2000년대 초 전자사전도 만들었는데요. 특히 샤프가 출시했던 리얼딕 전자사전은 국내 전자사전 시장을 선도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2004년 보도에 따르면 샤프의 국내 전자사전 시장 점유율은 60%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샤프에게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국내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샤프의 뒤를 바짝 쫓아 LCD TV를 출시했던 것인데요. 주력 사업으로 밀고 나가던 TV 시장에서 샤프는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선에서 누구보다 빠른 선두주자였지만, 기술력에서 패배하고 만 것이었죠. LCD TV로 인한 샤프의 위기는 몇 년간 지속됐습니다.
샤프는 국내외 TV 사업 철수와 본사 매각까지 했지만, 결국 대만 기업 폭스콘에 인수됐습니다. 일본 정부가 나서 샤프의 회생을 돕고자 했으나 인수를 막지는 못했죠.
조용히 샤프의 길을 걷다
폭스콘에 인수된 후 흥미롭게도 샤프는 보컬로이드 로봇 청소기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로봇 청소기 내에 보컬로이드 음원이 탑재됐는데, 사용자의 기분에 맞게 노래를 불러준다고 해요. 기기는 사용자의 음악 취향에 맞게 학습할 수 있다고도 발표했죠. 그러나 이후 로봇 청소기 출시는 잠정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전부터 출시하던 아쿠오스 스마트폰은 인수 이후로도 꾸준히 출시됐습니다. 샤프가 2011년부터 만든 아쿠오스 폰은 샤프의 액정 TV 브랜드인 아쿠오스 TV와 동일한 브랜드 이름을 공유합니다. 해당 모델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출시됐죠.
가장 최신 스마트폰은 지난해 5월 출시된 아쿠오스 R8 프로였습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8 2세대를 장착했고, 12GB 램과 256GB 저장공간을 갖춘 성능 좋은 5G 스마트폰이었죠. 무엇보다 카메라 성능이 우수한데요. 후면 카메라에는 47.2MP 이미지 센서와 독일 전문 카메라 기업 라이카(Leica)의 주미크론 19mm F 1.9 렌즈가 장착됐습니다. 특히 기기에 장착된 이미지 센서 크기는 일반 플래그십 스마트폰보다 크다고 해요. 빛을 받아들이는 면적이 커서 화질은 더욱 선명하죠.
다만 기기는 일본에만 출시되고 있다고 해요. 확인된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샤프의 스마트폰은 일본 내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 IT 가전전시회인 CES에서는 매년 흥미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CES 2020에서 샤프는 돌돌 말리는 롤러블 TV를 출품해서 화제를 모았어요. 해당 롤러블 TV는 장시간 전시됐는데도 불구하고 정상 작동될 정도로 튼튼했다고 하죠.
과거 명성 회복할까
고난을 꿋꿋하게 이겨낸 샤프이지만,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샤프가 과거 명성만큼 우수한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기술력도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죠. 실제 샤프는 지난해 폭스콘에 인수된 후 최초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해요.
지난해 인공지능은 업계의 큰 화두였죠. 이런 흐름을 쫓아가고자 했던 샤프는 최근 CES 2024에서 새로운 AI 아바타도 선보였어요. AI 아바타는 앞에 있는 사용자의 표정을 읽고 적절한 답변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확인한 샤프의 스크린 속 AI 아바타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었습니다. AI 아바타의 표정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고, 딱딱한 모습이었죠.
그뿐만 아닙니다. 샤프는 다양한 TV를 꾸준히 출시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 샤프가 내놓는 TV는 국내 삼성전자나 LG전자 제품과 완성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TV 화질과 해상도 측면에서 상당히 뒤떨어진다고 알려졌죠.
샤프가 경쟁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은 다소 분분한데요. 과거 명성을 완전히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한 편이에요. ‘최초’ 수식어로 일본과 전 세계를 제패했던 샤프는 다시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을까요?
테크플러스 최현정 기자 (tech-pl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