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 자유전공학부는 왜 '실패한 제도'가 됐나

[데이터로 보는 뉴스]
학과 쏠림·취지 변질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 부각
“대학별 맞춤 적용·체계적인 진로 지도 시스템 필요”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지난 1월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가 지난 1월 24일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생 확대 방침이 기초학문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며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대학 무전공 확대를 두고 여론이 뜨겁다. 교육부가 2025년까지 대학의 무전공 선발 비율을 25%까지 늘리라고 주문하면서다. 이에 무전공과 비슷한 형태로 시행됐던 자유전공학부의 과거와 현재를 데이터로 살펴봤다.

자유전공학부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면서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2009년 서울대가 법대 학부 폐지로 인한 정원 활용 방안으로 자유전공학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대는 정원 157명의 자유전공학부를 출범시켰다. 고려대(123명), 연세대(150명), 성균관대(80명), 이화여대(40명), 중앙대(133명) 등 서울 주요 대학도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했다. 그밖에 건국대(170명), 서강대(70명), 서울시립대(70명) 등 남는 법대 자원을 인기 학과로 배분하거나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유전공학부 제도를 실패로 꼽는 가장 큰 요인은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다. 자유전공학부를 서울권 대학 중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경희대 정도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설립 이래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학생 3757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한 학과는 경제학과 18.1%(680명), 경영학과 17.5%(658명), 컴퓨터공학과 11.3%(424명) 순으로 나타났다. 상위 3개 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자유전공학부생의 절반에 육박한다.

고려대 전공 선택 현황도 비슷했다. 고려대 2024년 1학기 전공 배정 현황을 살펴보면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경영학과와 컴퓨터학과로 집중됐다. 전체 143명 중 경영학과 27.2%, 컴퓨터학과 21.6%로 나타났다.

자유전공학부가 도입 취지와 달라졌다는 의견도 있다. 자유전공학부의 목표는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융합 학문'이었지만, 로스쿨 준비반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09년 성균관대는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하는 학생이 사시 1차 합격 시 등록금의 50%를 지원하거나 로스쿨 진학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다. 자유전공학부 개념의 한양대 정책과학대학은 각종 고시반 우선 선발권을 주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학생 소속감 부재와 행정적 피로도가 높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자유전공학부를 운영했다가 폐지했던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1학년 학생들이 자유전공으로 입학해 전공을 선택한 뒤에 본인 소속됐던 직속 선배가 없어 힘들어하거나 이탈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학교 입장에서는 이런 학생을 거의 일대일로 관리해야 하는데 여기에 수반되는 행정 관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에도 정부는 왜 무전공 확대를 강조할까.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학과와 전공으로 분리된 현재의 교육체계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육부 공식 입장이다. 교육부가 든 사례도 MIT, 스탠퍼드, 브라운대 등 전공 없이 입학해 탐색 과정을 거친 뒤 전공을 선택하는 대학들이다.

인센티브까지 내건 교육부의 강력 드라이브에 대학들은 무전공 확대 기조를 따르는 모양새다. 총장 4명 중 3명은 무전공 도입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135개교 총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7.0%(57개교)가 “무전공 도입 계획이 있다”고 밝혔고, 이미 자유전공 제도를 운영 중인 대학 61개교 중 77.0%(47개교)가 “선발인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고등교육 연구소장은 “대학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등록금이 10여 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대학 입장에서 인센티브는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부연했다.

[에듀플러스] 자유전공학부는 왜 '실패한 제도'가 됐나

교육 전문가들은 무전공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지적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가산점 지급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25% 쿼터제가 아닌 대학·규모별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백 소장은 “무전공이 세계적인 흐름이며 필요하다는 데는 교육계가 공감하고 있다”면서 “무전공은 자유전공학부에서 한발 나아가 단과대학 수준으로 단계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 진로 지도와 관련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