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직후 주가가 연일 '따따상'을 치고 있는 공모주 열풍 속에 비상장주식 불법유사수신행위가 활개를 치고 있다. '벤처투자', '액셀러레이터', '개인투자조합'과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 과거 불법유사수신행위에 연루된 업체가 사명만 바꿔 재차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자 피해 발생 이전 마땅한 제재 방안도 없어 투자자 주의가 요구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T사는 비상장주식 및 공모주, 하이일드(채권)펀드 투자 등을 미끼로 암암리에 일반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로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에 등록까지 마쳤지만, 설립 이후 단 한 건의 투자 실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상호도 '○○○○벤처투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벤처투자업체로 정식 등록은 되어있지 않다. 등록은 액셀러레이터로, 간판은 벤처캐피털(VC)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 영업은 장외주식이나 공모주 투자에 집중돼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회사가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하고 있음에도 정작 법에서 규정한 방식대로 투자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투자촉진법에 따르면 액셀러레이터는 전체 투자 금액의 40~50% 이상을 3년 이내 초기기업에 의무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회사의 투자 대상은 기업공개(IPO)를 목전에 둔 기업으로 의무투자 요건과는 무관했다.
회사 자기자본으로 직접 투자하는 본계정 투자나 개인투자조합을 통한 간접투자 방식도 아니다. 펀딩자금을 개인투자자로부터 모집하고 있음에도 중기부에 공식 등록된 개인투자조합은 없다. 모집한 투자금은 개인투자조합 형태가 아닌 T사의 대표 A씨가 별도 설립한 법인을 통해 집행되고 있다. 심지어 이 법인 조차도 과거 장외주식 관련 불법유사수신행위에 연루돼 사명을 변경한 업체다.
액셀러레이터라는 요건만 갖춘 채 실제 영업은 법망을 벗어난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금이 적절한 방식으로 투자기업에 배분됐는지 파악할 방법도 없다. 과거 VIK(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등 다단계 불법 투자로 문제가 됐던 사례와 판박이다.
사전 대응 방안도 마땅치 않다. 공식 보고 사항이 아닌 만큼 중기부에서는 이 회사가 설립 이후 한 번도 투자하지 않았다는 사실 외에는 확인이 어렵다. 중기부 관계자는 “설립이 3년이 된 만큼 정기조사 대상에 포함된다”면서 “피해 사실 여부를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등록 없이 벤처투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대해서도 최근에야 법이 개정된 만큼 소급 적용을 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서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이 회사가 투자한 업체 두 곳이 최근 코스닥 상장을 앞두면서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투자 회수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공유되고 있다. 보고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보니 상장에 임박해서야 사실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액셀러레이터 문턱이 크게 낮아지면서 일부 불법업체가 이름만 그럴듯 하게 내걸고 장외주식 공모 등 각종 불법 행위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비상장투자 시장에 대한 자율적인 규제 체계가 작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