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스팩)에 일제히 베팅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공모주 열풍에 합병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시초가가 공모가 2배 이상을 기록하며 투자 과열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스팩32호(하나32호기업인수목적)는 오는 19일까지 공모 청약을 실시한다. 모집 총액은 60억원으로 공모가는 여타 스팩과 마찬가지로 2000원이다.
특히 하나스팩32호 청약 경쟁률은 1247.72대 1로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신규 상장 추진 기업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경쟁률이다. 올해 가장 높은 수요예측 경쟁을 보인 케이웨더(1362대 1)에 얼마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스팩 가운데서 올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스팩 수요예측 경쟁률은 최근 점차 상승하는 추세다. 올해 신규 상장한 9개 스팩 모두 700대1 경쟁률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나스팩32호에 앞서 수요예측을 실시한 하나스팩31호, SK증권스팩11호, 유진스팩10호 등은 1000대1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투자자 관심도 크다. 연초 청약을 실시한 대신밸런스스팩17호는 일반 투자자 대상 1240.15대 1로 직상장 기업에 뒤지지 않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2022년말 대부분 스팩의 공모 청약이 미달됐던 것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다.
스팩은 인수합병(M&A)을 위해 상장하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다. 최근 비상장투자 시장에서 추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스팩을 통한 M&A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앞서 상장이 무산된 '삼프로'를 운영하는 이브로드캐스팅,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비전 검사 기업 피이아이 등이 스팩을 통한 증시 입성을 도전하고 있다.
특히 비교적 상장 규모가 적고, 합병을 성공리에 마친 증권사가 주관하는 스팩을 중심으로 기관투자자 수요가 쏠리고 있다. 실제 지난해 수요예측을 진행했던 200억원 규모 삼성스팩9호와 250억원 규모 KB스팩27호, 360억원 규모 신한스팩11호 등은 100대 1이 채 안되는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팩 합병은 벤처투자 시장이 불황일 수록 수요가 많다. 당장 자금조달과 기존 벤처투자자에 대한 자금 상환이 시급해지면서 공모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손쉽게 공모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서다. 실제 벤처투자가 한창 활황이던 2019~2021년 무렵 스팩 수요예측 경쟁률은 대부분 100대 1에 못 미쳤다.
추가 상장 신청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미래에셋비전기업인수목적5호, 15일에는 한국제14호기업인수목적과 에이치엠씨아이비제7호기업인수목적이 연이어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상장 문턱이 높아지면서 투자기업 회수 경로가 좁아진 벤처투자업계에서 스팩을 주요 회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분위기”라면서 “스팩 주관사보다는 스팩 최대주주가 어떤 회사인지를 살펴 투자 여부를 정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라고 전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