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확정했다. 2032년까지 배출가스를 절반가량 줄여야 하는 강화된 규제지만, 자동차 업계와 노동자 반발을 의식해 지난 해 제시한 최초 안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등 기준을 완화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발표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는 2027년식부터 2032년식 차량에 적용된다. 6년간 단계적으로 차량의 이산화탄소(CO₂), 비메탄계 유기가스(NMOG)와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 등 배출 허용량을 줄이는 게 골자다.
지난해 4월 EPA가 규제(안)을 처음 공개하자 자동차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규제(안)을 충족하려면 내연기관차 대신 배출량이 적은 전기차 판매 비중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PA는 최종 규정에서 업계에 대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 요건을 완화했다. 배출가스 기준은 처음부터 급격하게 강화하지 않고 2027∼2029년까지 점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또, 최초 안에서는 2032년식 승용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을 2026년식 대비 56% 줄이도록 했으나, 최종 규정에서는 감소 폭을 49%로 낮췄다.
애초 EPA는 새 기준이 도입되면 전기차가 2032년에 판매되는 승용차의 67%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종 규정에 따라 2032년 전기차 판매 비중이 56%로 낮아질 전망이다.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은 2022년 5.8%에서 2023년 7.6%로 늘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동차산업 노동자가 많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같은 경합 주의 표심을 의식해 규제를 완화했다”고 평가했다.
이들 주에서는 전기차로 급격히 전환하면 내연기관차를 주로 생산해 온 업계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 왔다. 전기차 판매가 예상보다 둔화한 것도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유럽연합(EU) 입법기구인 유럽의회도 이달 최신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유로7을 확정했다. EU 역시 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승용차 배출가스 부문에서 유로6 기준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으로 유로7을 완화했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