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등 일부 공공기관은 취업준비생과 이직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꿈의 직장'으로 여겨져 왔다. 금융 또는 에너지 공기업처럼 인기 있는 공공기관의 경우 채용 경쟁률이 100대 1을 훌쩍 넘기도 한다. 이들 기업을 준비하는 스터디 카페도 수백 개가 넘을 정도다. 재수와 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기업 못지않은 보수와 혜택 등 처우와 공무원처럼 안정적으로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라는 평가가 인기의 원인으로 보여진다.
공공기관이란 정부의 출연·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 각호의 요건에 따라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기관을 의미한다. 올해 대한민국에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을 포함해 총 327개로 지난해에 비해 20개 기관이 줄었다. 올해 초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통계정보원 등 3개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한 바 있다.
'공공'은 한자로 공평할 공(公)에 함께 공(共)을 쓴다. 공공기관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한 공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공적 대행사업을 하거나 공공재를 관리하는 공공기관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지원되는 만큼 민간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성과 도덕성이 요구된다. 공공기관 운영의 투명성과 청렴성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공공기관하면 연관되는 검색어가 아직도 방만경영, 혈세낭비, 도덕적 해이 등인 점은 많이 안타깝고 아쉽다. 일부 공기업의 사장은 해외 출장 시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사용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는 차관급 공무원 1일 숙박비 상한액보다 몇 배 이상 많은 금액이다. 겸직 규정을 어기고 부당 영리행위를 한 공공기관 임직원들도 적발된 적이 있다. 투자된 과제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해외 유령학회의 학술지를 이용한다는 뉴스에는 말문이 막힌다.
방만 경영도 문제다. 공공기관은 공적 영역의 행정력과 민간 영역의 추진력을 동시에 갖고 있고, 이익이 크지 않아 민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최소한의 이익으로도 추진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부 공공기관이 정부로부터 국책사업 수행 등을 위탁받고 집행하지 않은 예산이 막대한 규모에 이르는 일은 효율성 측면에서 큰 문제다. 적자를 보는 공공기관이 늘 성과를 억대로 가져가는 일도 여전히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 운영 및 정책 실패 원인은 기관들의 시대 변화에 대한 준비 부족, 임직원의 전문성 부족, 비효율적인 경영 전략 등 실로 다양하다. 정부가 이런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지난 2022년 예산·정원·복리후생 감축, 불요불급한 자산 매각 등을 골자로 하는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현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방향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민영화 등을 배제하고 기관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는 '생산성 제고' '관리체계 개편' '민간·공공기관 간 협력 강화'라는 공공기관 3대 혁신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먼저 생산성 제고를 위해 민간과 경합 또는 중복되는 기능을 조정하고 과다한 조직과 인력, 복리후생, 불요불급한 자산 등 방만경영 요소를 정비하고 재무건전성을 확보키로 했다. 공공기간 지정기준 정비 등을 통해 기획재정부가 직접 경영감독하는 기관을 축소하고, 재무성과 지표비중 확대 등 경영평가제도 관리체계도 개편했다.
또 공공기관이 보유한 빅데이터와 기술 및 특허의 개방을 통한 공유확대와 중소기업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 지원 등을 통한 민간과 공공기관 간의 협력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혁신 가이드라인의 특징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하향식 접근이 아닌 공공기관의 특성에 맞춰 자체적으로 혁신계획을 수립하는 상향식 접근이라는 데 있다.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지난해는 1만1374명의 공공기관 정원을 감축하고 경상경비도 7000억원가량 절감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중 주목할만한 점이 ESG경영 지원이다. ESG 열풍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들은 ESG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기업에는 신규 투자를 하지 않거나 기존 투자금마저 회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ESG는 이제 기업들에 선택이 아닌 생존의 요건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상 ESG 지원 강화를 요구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공공기관 자체의 ESG경영의 중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홍형득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이 올 초 펴낸 '공공기관 ESG 전략'에 따르면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 공공성이 짙은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이 ESG 기준을 중심으로 엄격한 경영실적 평가, 경영지침 적용 등으로 기관 운영의 책임성과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여야 우리 사회 전반에 ESG경영이 제대로 도입되고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올 초 기획재정부로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신규지정된 국가통계정보화 사업 전문기관인 한국통계정보원도 지난 2월 ESG경영 비전을 선포하는 등 신규 공공기관으로서의 책임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단기적인 ESG 실천 과제로 온실가스 배출 최소화 관리 체계 및 시스템을 마련하고 근로자 차별 및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방안 마련, 지역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설정했다.
ESG경영 중장기 계획으로 환경부의 '환경성 평가체계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공시 기준을 확립키로 했다. 한국통계정보원이 가진 장점을 살려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한 정보기술(IT) 및 통계를 주제로 한 무상교육에도 나선다. 또, 지능정보화 신기술의 자산화와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통계정보원은 챗GPT를 활용한 사내 행정지원 전용 챗봇 서비스 모델을 올해 8월까지 구축하고 향후 ESG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에도 생성형 AI를 활용해 적극 관리할 계획이다.
앞으로 신규공공기관으로서의 무한한 책임성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국통계정보원이 지능정보화 사업 분야에서 기업들과 함께 ESG 생태계를 견인해 정부의 역동경제를 지원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중물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최정수 한국통계정보원장 choi.jungsu@kosii.or.kr
〈필자〉 최정수 원장은 대전 출신으로, 독일 에어랑엔-뉘른베르크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에 통계청 박사 사무관으로 특별채용 되어 약 24년 동안 공직에 근무하며 통계생산은 물론 대외협력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 왔다. 통계청 대변인 실장, 경제통계국 서비스업동향과장, 산업동향과장, 통계정책국 통계정책과장, 경제통계국 경제통계기획과장, 통계개발원 연구기획실장, 경인지방통계청장을 지냈다. 6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 준비기획단 부단장직을 수행하면서 국내외 주요 행사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 결과 2009년 OECD 세계포럼 업무유공 '대통령표창', 2020년 우수공무원 '홍조근정포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