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경제 규모론 세계 4위이지만, 디지털금융(핀테크)에 관한 한 상당히 낙후된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 금융도 최근 금융의 디지털화로 점차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2023년 핀테크 시장 규모(간편결제 기준)는 120억 달러(16조원)로 우리나라의 6%에 불과하지만, 성장세는 2017~2023년간 연평균 51%의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성장률로만 보면 금융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만큼 빠른 수준이다.
그럼 소위 '도장문화'의 상징 같던 일본 금융시장이 변화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첫째, 일본 정부의 디지털 개혁을 꼽는다. 아베와 기시다 정부가 지속 추진하는 '규제·행정의 디지털화' 정책에 따라 금융당국도 '금융의 디지털 대전환'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2018년 금융청의 '디지털 전환 리포트' 발표에 이어 2020년 12월 '디지털 거버먼트 실행계획', 2023년 8월 '웹3.0 금융' 추진을 위해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까지 포함한 금융정책 가이드라인도 발표됐다.
둘째 일본경제의 인플레이션 국면 전환도 금융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일본은 2020년 이전까지 물가상승률이 거의 제로여서 안전하고 가치도 떨어지지 않는 은행예금이 최적의 금융상품이었다. 하지만 2021년 이후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해 작년엔 3.1%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적극적인 재테크와 노후대책이 중요해졌다. 보다 수수료가 싸고 수익률이 좋은 금융상품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따라서 금융회사로선 금융 효율화로 가성비를 높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디지털금융(핀테크)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단 해석이다. 또한 AI(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및 융합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생성형 AI는 IT 역량을 한층 업그레이드해주고 있다. IT 금융이라는 핀테크의 활용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 평가다.
어떤 분야가 활발한가. 10여 개 핀테크분야 가운데 간편결제, 로보어드바이저, P2P, 인슈어테크 순으로 활발하다. 그중 가장 성장세가 빠른 분야는 간편결제다. 2020년 이전만 해도 은행 결제수수료율이 1.0~5.0%로 높아 수수료가 낮은 핀테크 간편결제가 인기몰이를 했다. 대표 기업은 페이페이(PayPay)와 라인페이(LinePay). 특히 시장점유율 40%(사용자 4000만 이상)의 1위 기업인 페이페이는 2018년 소프트뱅크와 야후가 합작·설립한 QR코드 결제기반 업체로 유명하다.
일본의 간편결제 분야는 현재 빠른 성장세지만, 여전히 미래 성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유는 일본의 캐시리스 비율이 2023년 기준 36%로 우리나라의 93.6%, 중국 83%, 미국의 55.8%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해외업체들 관심이 커서 지난 2021년 9월 미국의 페이팔이 일본의 BNPL(先구매後지불) 업체인 페이디(Paidy)를 약 3조 1680억원에 인수했다.
로보어드바이저와 P2P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근 들어 발 빠른 모양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2023년 기준 시장 규모가 11억 달러(1조 5000억원)로 우리나라(1조 8000억원)보다 작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주식 상승세를 반영해서인지 전년 대비 20%의 높은 성장세다. 일본 최초의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면서 시장점유율 30%인 머니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P2P도 대출잔액 10억 달러(1조 3000억원)로 규모는 우리나라 수준이지만, 성장률은 전년 대비 30%로 빠르다. 대표 기업은 시장점유율이 각기 30%와 20%인 머니 포워드와 SMBC Moomin이다.
최근 눈길을 끄는 건 작년 '웹3.0 금융' 발표에서 봤듯이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에 대한 일본 정책당국의 관심과 이로 인한 시장 활성화다. 특히 토큰증권(STO) 시장에서 부동산, 채권 등을 중심으로 발행이 활발하다. 일본 핀테크는 성장 잠재력이 큰 데다, 최근 한일 간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일본 핀테크 시장 진출에 나서볼 만하다. 민관은 물론 한일 핀테크업계의 보다 활발한 협력과 진출을 기대한다.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