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은 김근영 물리·광과학과 교수팀이 양자역학계가 혼돈(카오스) 상태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을 '스펙트럴 복잡도'를 도입해 규명했다고 2일 밝혔다.
스펙트럴 복잡도는 양자역학계의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를 이용해 주어진 계의 복잡한 정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정의하는 양이다. 양자 혼돈 상태를 가지는 양자 다체계나 무작위 행렬이론에 기반한 양자 혼돈 연구에서 양자 혼돈의 전형적인 시간 변화를 보여주는 양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고전역학에서 혼돈은 물체의 초기 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그 물체의 경로가 대단히 크게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전 혼돈의 가장 유명한 예인 '나비 효과'는 나비의 날갯짓이 만드는 미세한 바람이 폭풍우와 같은 추후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변화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고전역학적 혼돈에 대응하는 양자역학적 혼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물리학의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아직 완전하게 이해되지 않은 난제 가운데 하나다.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제시하기 위해 양자역학계의 에너지 준위 사이 간격의 특정한 통계적 분포를 이용해 양자 혼돈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동적인 현상을 다룰 수 없고, 특정한 양자 상태에 따라 변하는 혼돈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스펙트럴 복잡도를 이용해 경기장 모양의 당구대에 존재하는 당구공의 양자역학적 동역학을 분석했다. 고전역학적인 당구공의 경우 당구대의 모양이 원형이면 혼돈 현상이 없으며, 원형이 아니면 혼돈 현상이 일어난다. 양자역학적인 당구공의 경우 당구대의 모양이 원형이면 스펙트럴 복잡도가 크며 원형이 아니면 스펙트럴 복잡도가 작다. 이러한 방식으로 스펙트럴 복잡도를 양자 혼돈을 판정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시간의 흐름과 양자 상태에 무관한 기존의 양자 혼돈 판단 방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양자 혼돈의 본질을 보다 정확하게 규명함으로써 양자 블랙홀과 우주 초기 현상의 이해, 양자 소자 및 양자 컴퓨터의 개발 등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근영 교수는 “양자 혼돈을 정의하고 그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이를 통해 양자역학적 열평형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 양자 소자 및 양자 컴퓨터 개발에도 응용할 수 있으며 양자 블랙홀에서의 양자 혼돈 연구를 통해 양자 중력과 우주 초기의 현상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와 휴고 카마로그 박사, 빅토르 얀케 박사, 정현식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학교 박사, 니시다 미츠히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박사가 수행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 양자정보과학 인적기반 조성사업, GIST AI기반 융합인재 양성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물리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D'에 에디터 추천 논문으로 선정돼 최근 게재됐다.
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