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즈쿠리(もの造り·장인정신)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신문화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1000년이 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예로 일본 니시야마에 위치한 '게이운칸' 여관은 705년에 설립되어 52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705년은 한국의 통일신라시대다. 이쯤되면 “대단하다”라는 생각보단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화(和)'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화(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민족을 '한(韓)'이라고 요약하듯 일본은 '화'로 통한다. 실제로 일본요리는 '일식(日食)'이 아닌 '화식(和食)',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着物)'는 '화복(和服)'이다. 사실 이런 문화는 철저한 계급문화의 유산이다. 천왕을 정점으로 이를 둘러싼 귀족, 이들의 무장계급인 사무라이, 그리고 최하위 계층인 농공인이 있었고, 농공인은 이주의 자유가 없었다. 즉 정해진 구역에서 끼리끼리 모여 살아야하다보니 과하게 배려하고, 각자의 생업, 서로의 나와바리(なわばり·영역)를 존중해야 하는 공존의 '화'문화가 뿌리내린 것이다. 한자리를 수백 년 지키는 노포, 프랜차이즈가 드문 일본이 이해될 것이다.
1980년대 반도체 패권국은 일본이다. NEC, 히타치, 도시바 등이 사이좋게 돌아가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세계 D램 시장의 75%를 장악했다. 일본의 성장배경은 장인정신이다. 시장이 요구하는 고품질의 반도체와 모노즈쿠리 정신이 더해져 극한의 성능을 구현하는 반도체를 만들어 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다. 1990년대 들어 PC 출하가 급격히 늘며 저비용 반도체 생산이 필요했다. 반면 일본은 변함없이 고품질의 D램에 집중했다. 그런데 당시 D램은 과잉 품질이었다. PC용은 5년보증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고품질, 극한기술, 오버스팩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고비용 구조에 빠졌고, 때마침 저비용 반도체 생산에 전력한 삼성전자에 1위를 내준 것이다. 일본 경제지 닛케이는 2010년 사설에서 '일본 반도체산업의 폐망은 세계흐름을 보지 못하고, 모노즈쿠리에만 몰두한 결과'라고 평했다.
가업승계는 사회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 경영 노하우를 후대로 전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현실적인 다양한 이유, 심지어 “사업은 아무나 하나”라는 말이 있듯이 준비 안된 후계자로의 상속은 혁신소멸, 기업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장인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모노즈쿠리를 기업가 정신이라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임금수준이 이미 일본을 넘어섰고, 디지털 격차는 20년에 이른다. 일본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덮어놓고 추종할 대상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동아시아의 최변방, 고립된 섬 토착민이 만들어낸 오타쿠 문화에 불과하다.
2025년은 한국 경제의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70세에 이르며 본격 은퇴에 나서고, 한국이 드디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창업 1세대의 본격 퇴진과 가업승계 기피로 700만 중소기업이 벼랑 끝에 몰릴 것이다. 기업은 사회의 자산이다. 가업승계가 능사가 아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경쟁우위이며, 창발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M&A가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한편 구조적 장기침체와 고령화에 빠진 대한민국은 M&A외 대안도 없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7년 연속 과학기술서적 판매 1위를 이어가며 동국대 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현재 세계 첫 비대면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