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 인류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미 3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은 당사국총회(COP)라는 이름으로 모여 다양한 배출권 제도도 만들고 감축 목표도 정해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데 국면이 묘하게 전환됐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나서더니 여러 단체가 모여 과학기반목표이니셔티브(SBTi)라는 것을 만들고 공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다. 또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하자는 RE100캠페인도 만들어졌다. 탄소 감축 의무가 국가간 정책 프레임에서 민간 국제 비즈니스 프레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제도들은 참여자들에게 SCOPE1(직접 배출)과 SCOPE2(간접 배출) 뿐 아니라 공급망, 운송, 제품 사용과 폐기까지 연관된 모든 배출을 아우르는 SCOPE3 배출량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또 연도별 감축 목표를 정하고 달성해야 한다.
당장 2030년까지 대부분 현재 배출량의 최소 40%를 감축해야 하고 2050년에는 순배출량 0를 달성해야 한다. SCOPE3 배출량을 포함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업에 관련된 모든 참여자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은행도 예외가 아니며 SBTi에 가입한 국내 대부분 은행의 경우 '금융배출량'을 적용한다. 은행이 2030년까지 40% 감축 약속을 했으면 그 은행을 이용한 기업 스스로가 40% 감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RE100과 SBTi 제도에 가입하고 감축을 선언한 기업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기업의 신용이 떨어지고 글로벌 자본이 빠져나가고 대출에 대한 강제 회수가 이뤄질 것이다. 지난 1997년 금융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기의 쓰나미가 올 수 있다. 이 제도는 국가에 의해 강제 받지 않지만 자본이 강제하는 무서운 제도들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세계적 기업들은 이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한 둑을 쌓고 있다. 스스로 감축 노력과 더불어 수조원이 넘는 돈을 탄소 배출권 확보에 사용하고 있다.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에 따르면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334개 기업 평균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49%이지만 현재 RE100에 가입한 한국의 34개 대기업은 2%대의 초라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K-RE100에 가입한 400개가 넘는 중소중견 기업의 신재생 에너지 사용 실적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리드 타임이 길다. 해상풍력은 인허가 기간만 5년이 넘게 소요된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연간 목표치를 정해 쉽게 구매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은 18.25TWh로 이는 LG디스플레이 한 회사의 연간 사용량 6.23TWh의 세 배에 불과하다. 앞으로 RE100, K-RE100에 가입한 수 많은 기업들은 무슨 수로 확보하고 정부는 무슨 수로 공급할 것인지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탄소배출권을 창출할 우량 탄소 상쇄 사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다. 탄소크레딧 가격은 폭등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이나 대기직접포집(DAC)같은 배출권 창출 사업의 탄소제거크레딧은 톤당 200만원 가까이 거래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대형사가 주요 구매자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을 두고 자선이나 기부란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소통상 전쟁은 잼버리가 아니다. 2024년은 정치인과 기업인들 모두 피치못할 피해는 최소화하고 신속한 대응을 위해 속히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시간이 정말 없다.
박희원 넷제로홀딩스그룹 대표 phw0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