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서둘러 책무구조도 수립에 나서고 있다. 제도 도입까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도 은행·지주를 뒤따라 빠르게 책무구조도 도입을 선언하고 있다. 잇따른 금융사고로 인해 신뢰를 잃었던 하루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다.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통해 내부통제를 강화하자는 분위기가 증권업계 전반에 감돌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이달 중으로 회계 및 법무법인 자문을 거쳐 책무구조도를 도입한다. 시스템 구축과 함께 시범운영을 개시해 연말까지 제도를 정착시키는게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 1월 준법경영부도 신설했다.
KB증권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KB증권 전 본부 부서가 참여하는 '내부통제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임원 및 부서장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내부통제 제도 개선 프로젝트 추진에 한창이다.
책무구조도는 임원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금융회사 스스로 각자의 특성을 고려, 사전에 명확히 정하도록 한 제도다. 당장 오는 7월 3일부터 모든 은행과 지주회사는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금융회사 임원의 본인 소관 업무와 내부통제 관리의무가 보다 명확해 지는 셈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시중 은행장과 만나 책무구조도가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당장 7월부터 제도 도입에 준비해야 하는 은행·지주와는 달리 증권사는 내년 7월 이후까지만 도입하면된다. 제도 혼선 등을 고려해 1년간 유예를 뒀다. 자산총액 5조원, 운용재산 20조원 이하의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제출 시기를 2년 뒤인데도 분주히 내부통제체제 수립에 한창이다. 신한투자증권이나 KB증권 등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역시 은행과 지주이 책무구조도 도입에 들어간 만큼 함께 내부통제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미 은행이나 지주가 책무구조도 도입을 현실화하고 있는데다 큰 틀까지 짜여진 만큼 증권업계 역시 내부통제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면서 “굳이 내년까지 미룰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자산 5조원 미만 중소형사인 한양증권의 경우 2년간 도입이 유예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책무구조도 수립에 들어갔다. 지난달 준법감시인 산하에 준법경영혁신부를 신설해 전사적 내부통제 프로세스를 진단·개선하는 업무를 맡겼다. 이와 함께 총 8건의 규정 재·개정과 23건에 이르는 업무 프로세스 개선도 추진 중이다.
증권업계가 책무구조도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그간 각종 내부통제 미비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2월에는 15개 증권사 준법감시위원들이 영국의 선진 내부통제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출장길에 오르기도 했다. 금융투자협회에서는 이른 시일 내에 각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활용할 수 있는 책무구조도 표준 예시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