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교육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개별 학습자 특성과 필요에 맞춘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지고,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유연한 학습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단순 지식 전달을 넘어 창의적 문제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협업 능력 등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기르는 데 교사를 돕는 AI 보조교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교육부는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과 '에듀테크 진흥방안'을 잇따라 발표하며 교육과 기술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에듀테크 분야에 대한 규제 혁신과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교육 데이터 개방과 활용을 촉진하며, 교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체계를 구축하는 등 교육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미래 교육의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비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등 디지털 교육의 확산
교육부는 2025년을 '미래를 위한 디지털 기반 교육개혁의 원년'으로 설정하고, 학교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5학년도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가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되어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선택의 자유와 탐색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AI와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다. AI에 의한 학습 진단과 분석, 개인별 맞춤형 학습 기회 제공, 학생 중심 학습 코스웨어 등의 기술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은 최적화된 맞춤학습 콘텐츠로 배우고, 교사는 데이터 기반 수업 설계가 가능해진다.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시보드를 통한 학습 데이터 분석, 교육 주체 간 소통 지원, 통합 로그인과 사용자 친화적 환경·경험(UI/UX) 등이 공통 서비스에 해당한다. 학생을 위해서는 'AI 튜터'가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고, 교사를 위해서는 'AI 보조교사'가 수업 설계와 맞춤형 교육, 평가 등을 돕는다.
AI 디지털교과서는 교육 질을 높이고, 학습 과정의 개인화와 교육 공동체 간 협력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학부모는 자녀가 혁신적 교육 환경에서 교과 내용을 습득하고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은 우리 교육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기술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우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교육적 변화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국제기구와 선진국들은 이미 디지털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동이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 접촉, 행동, 소비자 위험 등을 규정하고 각국의 정책적 개입을 촉구한 바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AI 위험성을 4단계로 분류하고, 고위험 AI에 대한 엄격한 규제 체계를 도입하는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주요국도 AI 윤리 가이드라인과 법적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등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회적 규범 정립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교육 현장에서 학습 포기, 사이버 폭력, 개인정보 침해 등 디지털 기술이 야기하는 부작용 사례가 속속 보고되면서 기술 활용에 따른 역기능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명확히 하고, 교육 주체들이 합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규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러한 배경 하에 교육부는 2022년 '교육분야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발표하며, AI 기술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3' 등으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교육을 둘러싼 기술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AI를 넘어 보다 포괄적 디지털 교육 규범 정립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고, 교육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쟁점과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지침으로서 규범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디지털 교육의 올바른 가치를 담은 규범 시안
이에 교육부는 세계 최초로 수립한 'AI 윤리원칙'을 디지털 교육 전반으로 확장하는 한편, 2023년 9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권리장전'을 교육 분야에 맞게 재해석해 '디지털 교육 규범'을 마련하기로 했다. 디지털 교육 규범은 크게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담고 있는데, '자유와 권리 보장' '공정성과 기회 균등' '안전과 신뢰 확보' '디지털 혁신 촉진' '인류 후생 증진'이 그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교육의 가치를 반영해 3월 28일에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소장 정제영)는 교육부와 한국교육학회가 공동 주최한 '디지털 인재양성 100인 포럼'에서 '디지털 교육 규범'의 시안을 발표했다. 디지털 교육 규범 시안은 총 6개 장과 28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디지털 교육 규범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2장은 교육자와 학습자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 3장은 디지털 교육의 공정성 확보와 기회의 균등 원칙을 상세화했다. 4장은 디지털 교육의 안전성과 신뢰 확보를 다루고, 5장은 디지털 기술과 교육 결합을 통한 혁신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디지털 세계 시민의 양성, 디지털 교육 확산을 위한 협력, 교육격차 완화 등 인류 후생 증진을 위한 디지털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참여를 통한 올바른 디지털 교육 규범 마련
디지털 교육 규범은 정부의 일방적 선언이 아니라,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폭넓게 담아내는 숙의와 공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될 계획이다. 교육부는 올해 6월까지 관계부처와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하고, 교원, 학생,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는 토론회와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학계,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목소리를 청취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갈 방침이다. 아울러 생성형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함께 확정할 예정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지혜와 협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교육 규범은 그러한 사회적 노력의 출발점이자 결실이 될 것이다. 규범이 교육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실천돼, 우리 사회 전반에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디지털 교육 문화를 뿌리내리는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맞춰 교육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타는 언제나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에 맞춰져야 한다. 기술은 교육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도구이지, 교육 주체가 될 수는 없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꿈과 끼를 살려주고, 자아실현과 행복 추구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적 사명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주체가 돼 디지털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이 필요하다. '교사가 이끄는 교실 혁명'의 중요한 동력이 하이테크지만, 교육적 성장을 위한 교사의 하이터치가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 교육 규범이 미래 교육을 디자인하는 나침반이자 우리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소망하며, 교육 가족 모두가 규범의 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따뜻한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jychung@ewha.ac.kr
〈필자〉정제영 교수는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는 미래교육 전문가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을 거치며 교육정책 기획 및 집행을 수행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해 교육학과장, 호크마교양대학장, 기획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대학중점연구소로 지정한 미래교육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