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이 국제 정치의 패권을 좌우하는 기정학 시대가 됐지만,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의 비효율성으로 이런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원장 직무대행 양승우)은 'STEPI 인사이트' 제323호를 통해 미국, 독일, 일본 등 국제사회의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 현황을 분석하고 우리나라 문제점 등을 파악해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김종선 선임연구위원(과학기술외교안보연구단)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변화 충격으로 국제사회도 미래 핵심기술들이 국제정세를 결정하는 기정학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며 “기정학 시대에는 중요 기술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동향 파악과, 이에 대응한 전략적인 과학기술 국제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정학 시대에 대응한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의 고도화 방안'이란 제목의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과학기술정책과 국제협력 중요성에 맞춰 관련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자국 공급망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과학법을 발표했으며, 반 중국을 중심으로 자국 기술안보 강화 및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기정학 시대에 대응해 혁신중심의 임무중심적 거버넌스를 강화하며 미국 주도의 기술개발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 첨단기술 확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자국 인재의 해외 진출을 위해 이적형 진출, 해외특별연구원사업, 국제공동연구 강화 등에 나서며 글로벌 위상 및 역량을 높이고자 과학기술 국제협력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자신들의 혁신 생태계를 촉진하고, 핵심기술 개발을 통해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 내에서의 위상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미·중 기술패권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중국과 모두 과학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세 국가가 자신들의 명확한 과학기술 발전전략을 가지고 국제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3개국 모두 싱크탱크를 활용해 국제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주도의 경직된 예산과 국제협력시스템으로 국제사회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어렵고 국제협력사업의 단기적 접근으로 정부, 관련기관의 국제협력 전문성이 떨어지는 등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정책과제들로 △국가의 명확한 목표 설정과 다부처의 임무중심형 기능 강화 △공공영역의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전문성 강화 △싱크탱크 역량 강화를 통한 정부지원 전문성 강화 △단기에서 장기시스템으로 전환 △선택과 집중 및 관련 환경 조성 등을 제시했다.
김종선 선임연구위원은 “높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서 작동되고 있다”며 기정학 시대 국제사회의 핵심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 고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과기정통부 주도의 과학기술기본계획의 낮은 위상으로, 전 부처의 과학기술 발전 목표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 과학기술 국제협력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먼저 국가의 명확한 목표 설정과 다부처의 임무중심형 기능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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