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50일, 임상시험 20% 감소…허가 차질 우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 50여일이 지난 가운데,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가 전년 대비 2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 갈등 후폭풍이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등 산업 부문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14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시험 승인현황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2월 20일부터 이달 8일까지 50일 동안 승인된 임상시험은 총 14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69건과 비교해 19.8% 줄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월별 임상 승인 건수를 보면 2월(20~29일)에는 총 12건, 3월 106건, 4월 8일까지 총 23건으로 나타났다.

예년과 비교해 국내 임상시험 승인이 줄어든 것은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절대 신청 건수 감소가 주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 올해 1월부터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인 2월 19일까지 국내 임상시험 승인은 총 142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8건과 비교해 오히려 14건이 더 많다. 하지만 2월 20일을 기점으로 전년 대비 임상시험 승인이 지속 감소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월별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자료: 임상시험참여포털)
월별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자료: 임상시험참여포털)

전공의 집단 사직은 신규 임상시험 진입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기존 임상시험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외래, 입원, 수술, 당직 등 남아 있는 교수들의 업무가 크게 증가했다. 신규는 물론 기존 임상시험을 이어 나갈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현재 원내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 가운데 40~50% 가까이가 아예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있다”면서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지만 의대 증원 사태를 해결하는 데 모두가 뜻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연구를 한다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의정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의약품, 의료기기 개발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의사들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임상시험을 위축, 허가 시점까지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 지난해 주요 제약·바이오 협단체 등을 통해 임상시험 지연, 중단 현황을 파악하는 등 꾸준히 모니터링 중이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허가에 차질을 빚을 만큼 임상시험이 지연되는 사례는 안 보이지만 장기화될 경우 허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