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는 길을 잃은 남매에게 음식과 잘 곳을 제공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머지않아 마녀는 검은 속내를 드러내며 잡아먹기 위한 요량으로 헨젤을 가둬 살찌우고 그레텔은 노예로 부린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다고 했던가. 동화는 허구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돼지 도살(Pig butchering)' 스캠은 많은 면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닮았다. 범죄자는 마녀처럼 수익성 높은 투자 기회로 위장해 스캠 피해자를 서서히 살찌우고, 인신매매 피해자를 노동자 수용소에 가두고 스캠 범죄에 가담하도록 강요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와 달리 현실 속 피해자는 경제적, 정서적 파탄에 이르게 된다.
FBI의 2022 IC3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인들은 로맨스 스캠으로 7억달러(약 94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전체 가상자산 투자 스캠 피해 규모는 25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버 위협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인신매매 피해자로부터 노동력을 착취해 스캠 범죄를 진행하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 마치 마녀의 덫에 빠져 제2, 제3의 헨젤과 그레텔을 양산되는 모양새다.
노동력 착취를 통한 스캠 범죄는 미얀마 미야와디에 있는 KK 파크(KK Park)라는 대규모 복합 단지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범죄자가 면책 특권을 누리듯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기업형 범죄의 온상이 된다. 이 곳에 위치한 대규모 수용소는 중국,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온 약 2000명의 인신매매 피해자의 노동 현장이자, 범죄 활동의 중심지다.
국제 기구의 분석가들은 수용소 노동자가 하루 12시간 이상의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와 더불어 신체적 학대, 위협을 통해 스캠 범죄에 가담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밝혔다. 수용소는 토지와 시설을 다양한 스캠 범죄조직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인신매매 피해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보안 조치도 마련돼 있다.
가상자산 관점에서 보자면 스캠 조직들은 스캠 외에도 인신매매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몸값을 받는 과정을 통해 가상자산 수익을 높이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돌을 따라가듯, 온체인 분석으로 스캠 조직의 자금 흐름을 분석하면, 스캠 수익과 몸값이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KK 파크는 현재 운영 중인 가장 크고 악명 높은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아래와 같이 KK 파크와 연관된 단 두 개의 몸값 주소에 대해 온체인 분석을 할 경우, 대규모 돼지 도살 스캠 조직과 관련된 막대한 액수와 함께 범죄 활동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몸값 주소는 몸값 외에도 여러 스캠 주소로부터 약 2420만달러(약 320억원)의 상당한 자금을 받았으며, 2022년 7월 이후 총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 주소가 KK 파크에서 운영되는 많은 회사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돼지 도살 스캠 범죄자들의 규모와 수익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포함한 가상자산 커뮤니티는 이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스캠에 맞서 싸우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분석, 국제법 집행 협력, 가상자산 업계 규제 조치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의심스러운 활동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당국과 정보를 공유하며, 엄격한 자금세탁방지(AML) 및 고객확인제도(KYC) 정책을 시행한다면 범죄 네트워크를 크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도,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는 오래된 속임수와 탐욕이 돼지 도살 스캠 등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돼지 도살 스캠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단순히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 이상이다. 블록체인의 고유한 투명성을 헨젤과 그레텔이 남긴 돌로 삼고, 범죄자를 추적해 블록체인의 신뢰를 재건하는 투쟁이다.
백용기 체이널리시스 한국지사장 yongkhi.paek@chainaly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