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대포통장 등을 예방하기 위해 은행들이 실시 중인 '금융거래 한도제한 제도'가 지난해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의 개선 권고에도 여전히 '그림자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계좌 비대면 발급이 증가하는 가운데, 무심코 한도제한 계좌에 거액을 넣었다가 길게는 6개월 이상 자금이 묶이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부분 급여이체 이력이나 신용카드 대금결제 실적을 요구하는데, 주부나 학생 등 경제활동 종사자가 아닌 경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중은행 다수 영업점은 고객 본인이 영업점을 직접 방문해 필요 서류를 제출해도 한도계좌를 풀어주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명문화된 규정이 없어 해제 권한을 각 은행별로, 영업점별로 지점장 등의 재량에 맡기기 때문이다.
주로 지점에 따라 3~12개월 가량의 신용카드 대금결제 이력이나 급여이체 실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법적 근거 없이 고객의 금융서비스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16년 시작된 한도제한 계좌는 금융거래 목적에 대한 객관적인 증빙서류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급된 계좌를 뜻하며, 상당수의 비대면 발급 은행계좌가 한도제한 계좌에 속한다. 하루에 인터넷뱅킹·현금자동지급기(ATM)를 통한 이체·출금이 30만원(창구 100만원)으로 제한된다.
문제는 은행별로 한도제한 계좌 해제에 대한 통일된 지침이 없어 고객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같은 방식으로 계좌를 개설해도 푸는 방법이 각기 은행과 영업점마다 달라서다. 은행에서는 공동인증서를 통해 4대보험(건강보험) 내역을 확인해 비대면으로 해결이 되는가하면, B은행에서는 9개월을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면서 기다려야 내 예금을 꺼낼 수 있는 것이다.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여러 차례 제기됐다. 2022년부터 1년여 간 대통령실 국민제안·신문가 등에 이와 관련된 민원이 50건 접수됐고, 국민권익위원회(2020년)와 감사원(2023년), 국무조정실(2023년)에 이르기까지 △증빙자료 통일·간소화 △안내 강화 등 개선요구도 이어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비판에도 뚜렷한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하루 이체한도를 기존 30만원에서 100만원(창구 3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데, 한도제한 계좌 제도가 7년 전 도입된 이후 금액 조정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은행 고객들도 한도제한 해제 없이 예금을 인출할 수 있는 방안을 공유하고 나선 형편이다. 대표적인 방식이 한도제한 예외출금(카드 대금, 대출이자, 공과금)을 이용하는 꼼수다.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 전자금융사업자 계좌로 충전할 경우 이체가 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혹은 모바일 대출을 받을 경우 한도계좌 제한이 풀리는 점을 이용해, 한도계좌만 풀고 바로 대출을 갚기도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불편을 인지하고 있으나, 증가 추세를 보이는 보이스피싱·대포통장 문제를 우려해 제한을 두고 있다”며 “은행권 자율규제 적용이 가능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형두 기자 dud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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