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과학의 날' 앞두고 과학계 쓴소리, “과학 연구자 한해살이 전락…안정적인 연구비 확보 시급”

“소액 과제 대거 삭제·컨트롤타워 부재로 우려 커져”
“과학계·정부 신뢰 회복 이뤄져야”
2월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R&D 예산 삭감·졸업생 강제 연행 윤석열 정부 규탄 카이스트 동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월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R&D 예산 삭감·졸업생 강제 연행 윤석열 정부 규탄 카이스트 동문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자들이 이제 한 해를 바라보고 사는 한해살이가 된 것 같다.”

R&D 예산 삭감, 의대 증원, 이공계 인재 이탈 등 최근 일련의 사태를 지나온 한 과학계 인사의 푸념이다.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계 목소리를 모아본 결과 과학계의 가장 큰 우려는 R&D 예산 삭감이다.

이준호 전국대학기초과학연구소연합회장(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은 “(R&D 예산 삭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소액과제를 대부분 일몰시켰다는 점이다. 교육부에서는 학문균형발전이라는 연구를 통째로 날렸다”며 “그 안에 비전임교수가 많이 참여하는 창의도전, 보호학문, 융복합, 지역우수연구자 등 관련 과제들이 들어있는데 나눠먹기식 과제는 안된다는 명분으로 일몰시켰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 역시 흔들리고 있다. 일괄적인 예산 삭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평가 기준도 없이 이전 과제들을 일괄적으로 10~20% 삭감했다는데 왜 깎였는지 이유도 모른다”며 “기존에 진행하던 과제들의 경우 당장 연구비 10~20%가 사라진 것인데 내년에 또 깎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면서 신뢰가 깨져 버린 것이 문제”라고 했다.

연구 인력 이탈도 과학계의 어려움 중 하나다. 이필호 기초과학 학회협의회장(강원대 화학과 교수)은 “의대 증원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늘게되면서 연구 인력 이탈 쓰나미가 올 것 같다”며 “예산이 줄면 대학원 진학률도 낮아지고 지역거점국립대는 대학원생 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게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온다.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 정책위원장은 “최근 대통령실에서 증액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문제가 됐던 부분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겠다고 하는 것만 진행한다는 것으로 읽힌다”며 “R&D 삭감 과정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해 위법 사안에 대해 관계자 처벌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기노조는 과학의 날에 맞춰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컨트롤타워 부재를 꼽는 의견도 있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과기연전) 수석부위원장은 “이전에는 법 규정에 따라 어느 시점이 되면 논의 시작, 국무회의 보고, 기재부 해당 사안 전달 등 시스템이 정해져 있었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무너졌다”며 “필요한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실에서 지시하는 과제에 키워드만 끼워 넣고 진행하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됐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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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과학계와 정부 간 신뢰 회복은 최우선 과제로 보인다. 이 원장은 “깨진 신뢰 회복이 필요한데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며 “구멍 난 곳을 채우면서 최소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액션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학문이나 소액과제 등은 명칭을 바꾸더라도 일정 부분 회복시키지 않으면 학문 생태계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R&D 예산 복원도 중요하지만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정 비율을 정해놓으면 기재부 입김이 줄어들고, 국가 미래를 위해 필요한 분야에 연구를 정할 수 있다”면서 “그 예산 중 20%는 시대 흐름에 맞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연구 균형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정책위원장은 “국회에 과학기술예산을 다루는 과학기술처를 상설기구로 설립해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R&D 예산을 모니터링 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행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쓰는 것을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예산을 관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